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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농업, 대만에서 배우는 농사 구독경제 - 농업 칼럼리스트·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10-02 09: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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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스마트폰으로 음악과 영화를 구독하고, 커피와 생수도 정기배송으로 받는 시대이다. 농업에서도 이러한 소비 방식의 변화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농산물을 수확한 다음 소비자를 찾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가 농사의 시작부터 참여하고 수확물을 정기적으로 받는 ‘농사 구독경제’이다.

  

대만에서는 소비자가 농업 생산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구지지원형농업(社區支持型農業), 즉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이다. 대만 농업부 농업지식포털에서는 CSA를 소비자 공동체가 농장 운영을 지원하는 직접 생산·판매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곡동제(穀東制), 예약제(預約制), 공동구매(共同購買), 농부시장(農夫市集), 채소상자(蔬菜箱) 등이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곡동제이다. 곡동(穀東)은 회사의 주주를 뜻하는 고동(股東)의 ‘股(고)’를 곡식을 뜻하는 ‘穀(곡)’으로 바꾼 표현이다. 소비자가 농산물이 생산된 뒤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농사가 시작될 때부터 비용을 부담하고 수확물을 나누어 받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회사의 주주처럼 소비자가 한 해 농사의 ‘농사 주주’가 되는 셈이다.

  

대만 이란현 위안산향(宜蘭縣員山鄉)의 곡동구락부(穀東俱樂部)는 이러한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2004년부터 회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벼농사를 운영했으며 이후 예약제 농장 등의 방식으로 발전했다. 농산물을 생산한 뒤 시장에서 구매자를 찾는 것과 달리 농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채소상자(蔬菜箱)도 주목할 만하다. 농장에서 생산한 제철 채소를 상자에 담아 회원에게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필요한 품목을 그때그때 주문하는 일반적인 온라인 판매와 달리 농장의 생산주기와 계절에 따라 농산물을 받는다. 농가는 지속적인 소비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먹는 농산물을 누가, 어디에서 생산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대만의 CSA를 그대로 ‘구독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대만에서 사용하는 명칭은 사구지지원형농업, 즉 CSA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일정 기간 생산자를 지원하고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다는 점에서는 오늘날 농업의 구독경제를 설계하는 데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다.

  

전남광주 농업에서 주목할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농업에서는 대체로 ‘생산-수확-선별-판매’의 순서로 소비자를 만났다. 농사 구독에서는 소비자를 생산 이전에 만난다. 농민은 올해 무엇을 심어 팔 것인가와 함께 누가 우리 농사의 회원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전남광주에는 이러한 농사 구독을 적용할 수 있는 농산물이 다양하다. 나주의 배, 담양의 딸기, 보성의 차, 해남의 고구마와 배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을 일정 기간 구독하도록 할 수 있다. 한 품목에 그칠 필요도 없다. 봄나물, 여름 채소와 과일, 가을 햅쌀과 고구마, 겨울 김장 채소를 연결하면 지역의 계절 자체가 하나의 구독 상품이 될 수 있다.

  

농촌융복합산업과 결합하면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딸기 구독 회원을 수확철에 농장으로 초청하고, 차 구독 회원에게 차밭 체험을 제공하며, 쌀 구독 가족에게 모내기나 벼 베기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치유농장에서는 허브와 꽃, 차, 채소의 정기 공급과 계절별 농장 프로그램을 결합할 수도 있다. 농산물과 농촌의 경험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농사 구독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정기배송보다 관계의 지속성이다. 농가는 회원에게 파종과 개화, 생육과 수확 소식을 전할 수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받을 농산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때로는 농장을 방문한다. 한 번 농산물을 구입한 고객을 다음 수확을 기다리는 회원으로 만드는 구조이다.

  

물론 농사에는 기상과 병해충, 작황이라는 변수가 있다. 따라서 구독 기간과 가격, 공급량, 품질 기준, 작황이 좋지 않을 때의 처리 방법 등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에게 농사의 특성과 생산과정을 충분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농사 구독경제는 택배를 정기적으로 보내는 판매 기법만으로 완성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만의 곡동제와 CSA에서 전남광주 농업이 눈여겨볼 것은 농산물의 판매 시점보다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시점이다. 수확한 배 한 상자와 쌀 한 포대의 구매자를 찾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씨를 뿌리기 전에 그 농사를 함께할 회원을 만드는 것이다. 농산물을 구독하는 것에서 농사의 계절과 과정까지 구독하는 것으로 확장된다면 농업의 판매 방식과 농촌융복합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친환경 농산물 구독경제와 대만의 채소상자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5.29.).

허북구. 2025. 전남도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 한국형 CSA의 마중물이 되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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