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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병원에서 식물원 산책 처방전 발급 - 한국명인명장연구소 대표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9-23 1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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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식물원을 걸어 보라는 처방전을 받는다면 어떨까. 대만에서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만 농업부 임업시험소(林業試驗所) 타이베이식물원(臺北植物園)이 의료기관과 협력해 추진하는 ‘식물원 처방전(植物園處方箋)’이다.

 

타이베이식물원은 타이베이시립연합병원 치매증센터, 아동기념병원(亞東紀念醫院)과 협력해 9월 23일부터 연말까지 식물원 처방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해당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사람이 의사의 평가를 거쳐 적합한 대상자로 판단되면 전용 처방전을 받아 타이베이식물원에서 지도에 표시된 동선과 활동에 따라 자연을 체험한다.

 

처방전에는 ‘스트레스 완화와 숙면(紓壓好眠)’,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걷기(靜心靜走)’ 두 종류의 지도가 마련돼 있다. 참가자는 지정된 장소를 천천히 걷고 머물면서 떨어진 꽃과 잎을 줍거나 식물의 향기를 맡고, 녹색과 햇빛의 변화를 느낀다. 고령자는 자연이 주는 감각 자극과 완만한 걷기 운동을 함께 경험한다.

 

이 프로그램의 배경에는 타이베이식물원이 축적해 온 자연치유 활동 경험이 있다. 임업시험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실시한 숲의 오감 활동에 참여한 174명을 조사한 결과 활동 후 스트레스·우울·불안이 낮아졌으며, 심박수와 혈압 등의 생리 지표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지난해 봄 처음 실시한 식물원 처방전 활동에서는 76건의 설문 가운데 70% 이상이 긍정적인 정서가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의사가 ‘식물원을 걸어 보라’고 권했다는 사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을 찾은 사람 가운데 적합한 대상자를 자연 기반 활동으로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의료기관과 식물원이 각각의 전문성을 가지고 하나의 건강관리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나라의 산림치유와 치유농업을 생각할 때도 중요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물리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처방하면 환자는 물리치료를 받고, 해당 치료가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해당하면 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처럼 어떤 서비스가 의료체계와 공적 지불체계 속에 들어가면 이용자의 비용 부담과 서비스 제공자의 수입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만의 식물원 처방전과 형태에는 차이가 있으나 유럽의 케어팜에서도 유사한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Inn på tunet’은 농장을 활용해 건강·돌봄, 교육, 치매 환자의 주간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6년 노르웨이 정부 자료에 따르면 약 425개 농장이 이러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서비스의 주요 구매자는 지방자치단체이다. 지자체와 광역자치단체, 노동복지청(NAV) 등이 농장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구조이다.

 

네덜란드에서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방정부가 사회지원법(Wmo)에 따라 주간활동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개인 예산(PGB)을 받아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케어오피스나 건강보험자가 개인예산의 재원과 연결되기도 한다.

 

국가마다 의료보험과 복지제도, 서비스 비용을 부담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만의 식물원 처방전과 유럽의 케어팜에서 함께 살펴볼 부분은 자연을 활용한 건강·돌봄 서비스를 개인이 찾아가 일회성 체험비를 지불하는 방식과는 다른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이나 지방정부 등 공공부문이 대상자를 연결하거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체계가 존재한다. 노르웨이 정부도 Inn på tunet을 예방적 복지서비스의 한 형태로 설명하면서 주된 구매자가 공공부문, 특히 지방자치단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림치유와 치유농업에서도 이제 치유 효과와 프로그램 개발에 더해 ‘누가 이용자를 연결하고, 누가 서비스를 제공하며, 누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대상자의 특성에 맞는 산림치유와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의뢰하고, 효과와 안전성이 축적된 프로그램이 의료·보건·복지의 공적 지불체계와 연결된다면 이용자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치유농장과 산림치유시설에는 지속적인 이용자와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대만의 식물원 처방전은 작은 지도 한 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병원과 식물원, 의료와 자연치유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케어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부문이 농장의 서비스를 구매하는 체계도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산림치유와 치유농업에서도 치유 효과의 입증과 함께 의료·보건·복지체계와 연결되는 서비스와 비용 지불구조를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늘어나는 치유농장, 선택받는 법.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9.21.).

허북구. 2026. 치유 이면의 치유농장을 먹여 살릴 수입구조.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칼럼(202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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