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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흑사병과 코로나 19의 농업에 대한 메시지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0-08-17
김동국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코로나 19가 다시 기승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국지적으로 빈발한 가운데, 3번의 대 유행이 발생했다. 그중 최악의 전염병은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페스트)이다. 흑사병은 2억 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8,000만 명이던 유럽 인구 중 무려 6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의 유행은 1346년 몽골군이 크림 반도의 페오도시아라를 공격한데부터 시작됐다. 페오도시아는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흑해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이탈리아 교역의 중심지였다.

 

페오도시아는 몽골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끄덕도 하지 않았고, 전투는 몇 주 동안 지속됐다. 그 사이에 몽골군 진영에서 전염병이 발생해 싸울 수가 없었다. 몽골군은 투석기로 시체를 상대 진영의 성안으로 날려 보내고 후퇴했다.

 

전염병은 순식간에 페오도시아에 퍼졌고, 제노바 상인들은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흑사병균과 함께 이탈리아 각지로 도망쳤다.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을 실은 배가 교역 거점인 콘스탄티노플, 시칠리아, 사르데냐, 제노바, 마르세유로 기항했다. 이들 항구는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북아프리카, 중동에까지 확산되었다. 흑사병을 유일하게 면한 곳은 인구가 적고 왕래가 없었던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뿐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교통망을 타고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유럽사회에 대해 교회의 권위 변화, 고른 인재 등용, 농노제의 몰락에 영향을 미쳤다.

 

흑사병이 유행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교회의 권위는 높은 가운데 전연염병은 하나님이 내린 형벌로 ‘악덕의 증명’이라고 했다. 전염병이 확산되자 교황 클레멘스 6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용서를 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클레멘스 6세는 아비뇽(당시에는 프랑스 아비뇽에 교황청이 있었다)을 철수 했다. 성직자도 ‘악덕의 증명’이어야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어가면서 교회의 권위는 떨어지고, 국가의 존재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등장했다.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절반 이상을 감소시켰다. 이것은 기존의 제도 속에서 등용되지 못한 인재가 등용 될 수 있게 사회와 사상의 틀을 바꾸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구감소는 노동력이 크게 필요로 하는 농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흑사병이 유행하기 전 유럽에서는 농도라 불리는 사람들이 귀족 영주와 교회 토지에 농사를 짓고 임대료를 납부하는 ‘장원제’가 있었다. 농노들은 수입 증대를 위해 개간해서 경작지를 확장하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 노동력으로 삼았다.

 

이것이 세대를 거치면서 농업인구와 경작지는 팽창되었는데, 흑사병으로 일꾼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인구 감소로 희소하게 된 노동력은 당연히 가치가 상승했다. 귀족과 영주는 영지(농지)의 유지 인력 확보를 위해 땅값과 세금을 면제하는 등의 처우 개선을 도모했다. 인구 감소는 영지에서 생산한 것의 구매력도 저하시켰다.

 

영주 등 특권층은 지출은 늘어난데 비해 수입은 적게 되어 봉건적 신분제도가 해체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다. 흑사병 전염에 의해 본격적으로 촉발된 농노의 자유농민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14세기 말에는 노예 제도의 붕괴가 진행되었다. 흑사병은 이렇게 유럽의 농노제 몰락과 자본주의의 전환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山本太郎. 2011. 感染症 と文明).

 

중세 「봉건적 신분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지난 20년간 세계를 석권해 온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은「선택과 집중」이론이다. 생산성과 경쟁 원리로 경주 승자가 생존하고, 거기에 자금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도 각각의 부품을 생산성과 경쟁력이 높은 곳을 선택해서 집중 생산하고, 그것을 모아 조립을 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많은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가 조금이라 저렴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 진출해 있다. 그 과정에서 공산품에 비해 국내 농산물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공산품을 팔아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농산물은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코로나 19는 그러한 주장에 허점이 매우 많음을 증명했다. 우리는 코로나 19를 통해서 하나의 부품이 조달되지 못해 자동차 생산의 전 공정이 멈추는 일을 보았다. 먹을거리는 공산품과 달리 공급에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은 식량안보, 안전한 먹을거리의 안정적이고, 다양하며, 지속적인 공급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 19는 그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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