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늙으면 밥심으로 산단디, 고추무름 해서 밥 묵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작은언니는 한동안 입맛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밥이 통 당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언니가 고추무름 덕분에 밥을 먹는다니 반가웠다. 아들 득현이가 좋아해 만들었는데, 정작 언니의 숟가락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야는 우리가 어려서 묵었던 바지락젓, 칠게젓, 고추무름을 좋아해야.”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언니를 따라 시집가서, 이제는 조카의 입맛에까지 자리 잡았구나.
상강 무렵이면 텃밭을 바라보는 마음이 급해진다. 된서리가 지나면 고추와 가지는 기운을 잃는다. 더 자라기를 기다리기보다 남은 열매와 잎을 거둘 때다. 남편이 심은 순한 고추와 나를 위해 심은 매운 고추 사이를 오가며 여린고추와 잎을 땄다. 고추바구니를 바라보다 문득 언니의 밥상이 떠올랐다.
예전 이웃 할머니는 밭푸성귀를 보며 화학비료를 많이 주면 땅 맛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할머니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내게는 먹거리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 남았다. 할머니가 가꾸던 밭에 다른 이들의 농사가 들어선 뒤로는 그 말이 더욱 자주 떠올랐다. 무심히 바라보던 남편의 텃밭도 달리 보였다. 아버지가 만들던 두엄을 남편이 이어받아 정성껏 기른 가지와 고추가 새삼 귀해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엌은 내 놀이터였다. 아궁이 곁에 앉아 솔잎을 긁어모은 갈퀴나무로 불 때는 일을 도왔다. 무쇠솥에서 밥물이 넘치면 어머니는 어린 고추를 밥 위에 얹으셨다. 뜸이 들고 솥뚜껑이 열리면 흰 밥알이 붙은 고추 사이로 푸르딩딩한 향이 피어올랐다.
어머니는 양푼에 멸치젓국과 간장을 넣고 찐 고추를 손끝으로 터뜨려 조물조물 무치셨다. 깨소금과 참기름이 더해지면 반찬 하나가 완성됐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였지만, 그 맛은 줄기차게 나를 따라 다닌다.
가족을 떠올리는 데는 음식만 한 것이 없다. 봄나물을 보면 막둥이 남동생이 그립고, 메밀묵을 보면 오랜만에 돌아올 작은오빠를 기다리던 시간이 생각난다. 이제 고추무름에는 어머니의 부엌과 언니의 안부가 함께 담긴다.
나도 해마다 고추무름을 만들었지만 기억 속 맛에는 좀처럼 닿지 못했다. 무쇠솥도, 밥 위에서 고추를 찌던 시간도 달라졌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밥 한 숟가락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냄비에 밥과 물을 넣고 뽀얀 밥물이 우러나도록 끓인다. 씻어둔 어린 고추와 고추잎을 넣어 부드럽게 익힌 뒤 건진다. 멸치젓국과 간장, 약간의 고춧가루, 마늘, 볶은 깨로 만든 양념에 고추를 두 갈래로 터뜨리듯 무친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더해 가볍게 버무린다. 젓국과 간장은 조금씩 넣으며 간을 맞춘다.
투박한 접시에 담고 남은 양념에 밥을 비볐다. 그제야 오래 찾던 어머니의 밥상에 조금 가까워진 듯했다. 언니가 왜 고추무름에 밥을 먹는지 알 것 같았다.
한 끼를 먹게 하는 힘은 맛에만 있지 않다. 나를 먹이고 돌보던 사람의 기억도 숟가락을 들게 한다. 밥상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손길을 오늘 내가 잇고 있을 뿐이다. 서리 오기 전, 고추 한 알과 잎 한 장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차린 밥상이 몸의 허기와 함께 마음의 허기도 다독여주기를 바라면서.
참고문헌
곽경자. 2026. 막걸리와 전통 식초의 문화·기술 기록, 동동주.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0.19).
곽경자. 2026. 담양 슬로푸드 공동체의 ‘정조지’ 연화초 재현과 치유.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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