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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새로운 미식, 나주배 세비체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6-08 08: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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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날씨가 더워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원하고 가벼운 음식을 찾는다. 우리나라에는 여름철 별미로 회를 초장이나 된장과 채소, 얼음 육수와 함께 즐기는 물회 문화가 있다. 신선한 해산물의 맛과 새콤한 산미가 어우러진 물회는 무더위를 이겨내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식문화와 세계 음식문화를 연결해 보면 가능성이 하나 떠오르는데, 그것은 나주배를 활용한 한국식 세비체(Ceviche)이다.

 

나주는 오랫동안 ‘배의 도시’로 알려져 왔다.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속에서 자란 나주배는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수분, 은은한 단맛으로 명성을 얻어 왔다. 그러나 나주배는 지금까지 주로 생과일이나 선물용 과일로 소비되어 왔다. 이제는 나주배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여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세비체는 페루를 비롯한 남미 연안 지역에서 발전한 대표적인 해산물 요리이다. 신선한 생선이나 새우, 관자 등을 라임이나 레몬즙에 절여 산의 작용으로 단백질을 응고시킨 뒤 채소와 향신료를 곁들여 먹는다. 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익힌 듯한 식감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미식 트렌드 속에서 세비체가 건강식이자 고급 요리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세비체의 기본 원리는 한국 음식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한국에는 예로부터 각종 해산물을 식초와 채소에 버무려 먹는 초무침 문화가 있었다. 여름철 즐겨 먹는 물회 역시 신선한 해산물에 산미를 더해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세비체와 공통점이 많다. 그런 점에서 세비체는 전혀 낯선 외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에도 충분히 친숙한 조리 방식인 셈이다.

 

여기에 나주배를 더하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나주배는 풍부한 수분과 아삭한 식감, 자연스러운 단맛을 지니고 있다. 식초나 감귤류가 가진 강한 산미를 부드럽게 완화해 주며, 해산물 특유의 비린 맛을 줄여 주는 역할도 한다. 또한 채 썰거나 깍둑썰기한 배는 해산물과 함께 씹을 때 상쾌한 식감을 제공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깔끔하고 가벼운 맛을 구현하는 데도 적합하다.

 

만약 라임 대신 한국의 식초와 유자를 활용하고, 양파와 채소, 그리고 나주배를 넣어 세비체를 만든다면 어떨까. 이는 단순한 퓨전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과 식문화에 맞게 재해석한 새로운 세비체가 될 수 있다. 유자의 상큼한 향과 산미는 세비체 특유의 신선함을 살려주고, 나주배의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식감은 해산물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

 

또한 고수 대신 미나리나 깻잎과 같은 지역 채소를 사용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활용한다면 더욱 한국적인 색채를 갖게 된다. 나주배와 유자를 활용한 세비체는 세계 음식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조리법을 지역 식재료와 결합하여 새로운 음식문화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새로운 메뉴 개발에 그치지 않고, 지역 음식관광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각 지자체는 음식관광을 지역 활성화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는 곳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지역 음식이 차별화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은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다.

 

필자는 지난해 나주시립도서관에서 진행된 인문학 프로그램 「나주의 인문·자연환경과 음식문화」 강연을 통해 전라도 음식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분석한 바 있다. 실제 한정식 상차림을 비교한 결과, 과거에 비해 지역별 차별성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음식관광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음식관광은 단순히 맛집을 홍보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자연환경, 생산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주배 세비체는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나주의 대표 농산물인 배와 남도의 풍부한 해산물, 그리고 세계적인 조리법인 세비체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산강 유역의 농업문화와 배 재배의 역사, 남도 해산물 문화라는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한 매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음식관광의 경쟁력은 맛 외에 그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을 때 높게 된다. 나주배 세비체는 나주배의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세계 음식문화와 지역 식문화를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또한 나주가 단순히 ‘배의 도시’를 넘어 새로운 미식을 창조하는 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회가 한국인의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았듯이, 나주배 세비체 역시 한국식 세비체의 한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역 농산물과 세계적 조리법의 만남은 새로운 음식문화를 탄생시키고,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나주배 세비체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음식이며, 나주의 새로운 미식 자산으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남 지자체 음식팀의 실패와 영암군 오색 월출소반의 성공.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8-18).

허북구. 2025. 남도국제미식박람회와 남도 음식의 정체성.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9).

허북구. 2025. 장흥 된장 물회와 고흥 유자 세비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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