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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농작물, 기후변화에 맞는 재배력 만들어야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6-05 14: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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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며칠 전 한 화훼농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농민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내용은 예년처럼 재배했는데 꽃이 너무 빨리 피려 한다는 것이다. 그 농가는 특정 화훼작물을 수십 년 동안 재배해 온 베테랑 농가다. 어느 시기에 파종하면 언제 꽃이 피고, 어느 시기에 출하하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 몸으로 익힌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올해도 예년과 비슷한 시기에 파종하고 관리했지만 상황은 달랐다. 6월 말 출하를 목표로 했는데 이미 꽃봉오리가 형성되어 6월 중순이면 개화가 시작될 것 같다는 것이다. 혹시 개화를 늦출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이자 하소연이었다. 이는 특정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전남 곳곳의 농업 현장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이 농사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농사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식물의 생육과 개화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온도, 일장(日長), 광량, 수분, 토양 상태, 영양 조건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개화는 단순히 씨를 뿌린 뒤 일정한 날짜가 지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물마다 개화에 필요한 적산온도(積算溫度)가 있고, 장일성 식물과 단일성 식물처럼 낮의 길이에 반응하는 특성도 다르다.

 

과거에는 이러한 조건들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경험을 통해 재배력을 만들 수 있었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파종하면 언제 수확할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봄철 고온 현상과 겨울철 이상고온이 반복되면서 작물의 생육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결국 기존 재배력이 맞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남의 주요 농작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와 사과는 개화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봄철 저온 피해 위험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마늘과 양파는 월동 환경이 달라지고 있으며, 벼 역시 생육 단계가 예년보다 앞당겨지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시설원예 작물은 더욱 민감하다. 화훼류와 채소류는 출하 시기와 가격이 직결되기 때문에 개화나 수확 시기의 변화가 곧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재배력의 상당수가 과거 기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농업기술센터나 농업 관련 기관에서 보급하는 재배 달력도 대부분 과거 평균 기상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후가 변하고 있으므로 재배력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내비게이션 없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재배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전남은 전국 최대의 농업 지역 가운데 하나인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 중심의 재배력에서 데이터 기반 재배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지역별 기상 데이터 축적이 중요하다. 같은 전남이라도 해안 지역과 내륙 지역, 평야 지대와 산간 지역의 기후는 다르다. 여수와 순천, 나주와 장성, 해남과 구례는 평균기온과 적산온도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지역별 생육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축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둘째, 주요 농작물별 적산온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파종부터 개화, 수확까지 필요한 온도 조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보다 정확한 재배 예측이 가능해진다. 이미 일부 선진 농업국에서는 적산온도와 기상예측을 결합한 농업 의사결정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셋째,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최근에는 기상정보와 생육 데이터를 분석하여 개화 시기와 수확 시기를 예측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농민의 경험을 디지털 데이터와 결합하면 훨씬 정확한 재배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넷째, 주요 품목별 기후변화 대응 재배 매뉴얼을 개발해야 한다. 벼, 배, 양파, 마늘, 화훼류, 시설채소 등 주요 작물을 대상으로 파종 시기와 정식 시기, 수확 시기를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농업은 본래 자연을 상대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의 변화 속도가 농민의 경험 축적 속도보다 훨씬 빠른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경험이 최고의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경험과 데이터가 함께 가야 한다.

 

전화 속 화훼농가의 걱정은 단순히 꽃 한 작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후온난화 시대 농업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농민의 경험을 존중하되 그 경험을 데이터로 연결하고 과학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전남 농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재배력 구축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6. 전남 농업, 데이터 기반 발전 대책 세워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6.5.28.).

허북구. 2026. 폭염을 자원화하는 전남 농업 대응 전략.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5.4.27.).

허북구. 2024. 지구 온난화가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의 농업칼럼(20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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