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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려인마을, 연해주 독립유공자를 찾아서 ‘김미하일 선생’ “교사에서 혁명가로…연해주를 흔든 한 고려인 항일독립운동가의 피어린 생애” 2026-04-16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또 한 명의 잊혀진 고려인 독립운동가를 역사 속에서 다시 불러냈다.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열일곱 번째 인물,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선생(1896~1938)의 삶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다.

김 미하일 선생은 1896년 러시아 원동 연해주 지신허(地新墟)의 한인 마을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마트베이의 저서에는 그의 생일이 12월 20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일부 자료에서는 11월 6일생으로도 전해진다. 러시아명은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Ким Михаил Михаилович)’, 본명은 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부인 김 베라 가브릴로브나와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뛰어났던 그는 지신허 소학교와 아지미 전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뒤 라즈돌리노예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원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고향과 시넬리니코보 등 한인 마을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육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징집된 그는 이르쿠츠크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독일 전선에 투입됐다. 전선에서 볼셰비키들과 교류하며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을 깨닫게 된 그는 반전 사상을 전파하는 활동에 나섰다.

1917년 동원 해제 후 연해주로 돌아온 그는 혁명운동에 뛰어들었고, 10월혁명 이후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소비에트 토지국 요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1922년에는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혁명 활동을 이어갔다.

김 미하일 선생은 조직을 이끄는 핵심 지도자로 성장했다. 1919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장도정, 김진, 최성우, 한용헌, 전일 등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일세당’을 결성하고, 기관지 『일세보』를 발간하며 사상을 확산시켰다.

1920년 연해주 정세 변화로 백파정권이 붕괴되자, 일세당은 공개 조직인 ‘한인사회당’으로 개편됐다. 그는 같은 해 3월 14일 신한촌 슬라브정교 사원에서 열린 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되며 지도부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연해주 한인사회당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결된 지방 조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반일 무장투쟁을 위한 적군부대 조직에도 나섰다.

아라스도우리, 수찬, 이만, 다반 등 4개 지역에서 편성된 부대는 총 1,260명 규모로, 당시 연해주 한인 사회의 조직적 항일투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에도 그는 당학교 수료, 검찰관, 당위원회 간부 등으로 활동하며 정치·행정 분야에서 영향력을 이어갔다. 특히 1935년 이동휘 선생의 장례를 직접 주관하며 동지적 의리를 지켰으나, 이 일로 당 기관의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스탈린 체제의 대숙청 속에서 비극을 맞았다. 1937년 4월 내무인민위원회(NKVD)에 체포된 그는 반혁명 활동 및 첩보 혐의로 기소되었고, 1938년 5월 하바롭스크에서 열린 비밀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즉시 처형됐다.

그가 체포된 이후 가족들은 1937년 가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부인 김 베라 가브릴로브나는 1992년 생을 마감했다.

김 미하일 선생은 1957년 소련 최고재판소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복권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광주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 미하일 선생의 삶은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겪은 고난과 저항의 역사를 상징한다”며“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은 과거를 기리는 것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적 책임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사로 시작해 혁명가로 살아간 김 미하일의 삶은 개인의 이력을 넘어, 나라 잃은 민족이 걸어야 했던 길 그 자체였다. 총을 들고 싸웠던 시간, 조직을 이끌었던 순간, 그리고 침묵 속에서 사라진 마지막까지—그의 삶은 오늘,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다시 기억되며 잊혀진 역사를 다시 깨우고 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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