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8일 개최한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 리 비딸리 특별전 연계 토크쇼 및 북콘서트가 깊은 감동 속에 마무리됐다.이번 행사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으며, 한 개인의 기억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되묻는 뜻깊은 시간으로 진행됐다.
행사의 시작은 고려인마을아리랑가무단의 축하공연 '고려아리랑' 합창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잊혀진 시간과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어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는 “고려인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지만, 동시에 지켜낸 정체성과 공동체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오늘 이 자리는 잊혀졌던 이름을 다시 부르고, 기억을 이어가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개식행사 후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며,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 리 비딸리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고려인들의 흔적을 깊이 있게 마주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리 비딸리의 외동딸이자 카자흐스탄 미술사학자인 리 까밀라의 토크쇼였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나는 자고배(혼혈인)다』를 중심으로 가족사와 삶의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특히 고려인으로 살아온 정체성과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리 까밀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꺼내놓았다. “열여섯 살에 처음 여권을 받았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러시아인’으로 민족을 표기하라고 했다. 나는 러시아어를 사용했고, 어머니가 러시아인으로 러시아 문화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오랫동안 그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나는 러시아 문화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살았지만, 스스로를 러시아인이라고 느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18살이 되던 해, 스스로 여권사무국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고려인’으로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의 여권에는 ‘고려인’이라고 적혀 있다.”
이 짧지만 단호한 고백은 현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적 변경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선택하고 되찾은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리 까밀라는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 배경도 함께 전했다. 그의 글쓰기 뒤에는 저명한 시인이자 번역가, 화가였던 친구 리 스따니슬라브(1959~2024)의 깊은 격려가 있었다. “그는 내가 이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고, 잊지 말고 남겨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이 고백에는 단순한 개인적 감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라질 뻔한 민족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과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단순한 전시와 강연을 넘어서는 자리였다. 리 비딸리라는 한 과학자의 삶과, 그를 기억하는 딸의 목소리를 통해 관람객들은 한 시대를 관통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마주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나는 누구인가.” 강제이주와 유랑, 그리고 동화와 경계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아온 고려인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에 광주 고려인마을은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와 기억을 이어가는 다양한 전시와 학술·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잊혀진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 그리고 그 이름 속에 담긴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 후손들의 마을공동체 '고려인마을' 이 역사를 이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려방송:임용기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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