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 1960년대 김기철·송정애 부부/사진=고려인마을 제공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개최 중인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이 관람객들의 깊은 공감 속에 오는 6월 말까지 연장되며, 그 중심 인물로 고려인 한글신문 ‘레닌기치’ 의 여성기자 송정애(1907~1988)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송정애는 1931년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사범대학교에 입학하며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비극을 겪으며 중앙아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지만, 그는 끝내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특히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레닌기치 신문사에서 활동하며 한글로 기록하는 일을 평생의 사명처럼 이어갔다. 그의 삶은 화려한 업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은 분명 공동체 속에 살아 있었다.
당시 고려인 사회에서 여성 기자는 매우 드문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송정애는 단순한 언론인을 넘어, 초기 고려인 여성 지식인이자 언론인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더욱이 강제이주 이후 한국어 교육이 약화되고 러시아어 중심 사회로 재편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한글로 글을 쓰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니라, 언어를 지켜내기 위한 실천적 행위였다.
그의 글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을 기록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삶, 노동과 정착의 과정, 그리고 공동체가 겪어온 변화의 시간들. 그의 기사들은 바로 이러한 삶을 담아낸 ‘기록되지 않은 역사’, 곧 생활사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조용한 기록자’의 삶을 현재로 불러내는 자리다. 선봉에서 시작해 《레닌기치》, 그리고 고려일보로 이어지는 고려인 한글 언론의 흐름 속에서, 송정애는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언어의 수호자’로 자리한다.
또한 그의 삶은 개인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 그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김기철의 아내로, 부부 모두 문학과 언론 분야에서 활동하며 고려인 문화 형성에 기여한 지식인 가정을 이루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그동안 역사 속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언론인의 역할을 전면에 드러내며, 고려인 한글문학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주고 있다. 고려방송 역시 한글 언론의 계보를 따라 주요 인물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송정애의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며, 그의 기록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고 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한글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위에서 간신히 지켜진 것”이라며 “송정애 기자의 삶은 그 사실을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역사는 종종 위대한 이름을 기억한다. 그러나 언어는, 이름 없는 이들의 손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지금, 그 조용한 이름 하나가 다시 우리 앞에 선다. 송정애. 그녀의 펜 끝에서, 한글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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