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오랜 시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독립운동가 김병무 선생(1897~미상)의 삶을 다시 세상에 불러냈다.이름조차 희미해졌던 한 사람.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바로 김병무 선생이다.
그는 1897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조국이 무너진 시대, 그는 평범함에 머무르지 않았다. 1919년 12월 30일,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고려혁명군에 입영하며 자신의 삶을 조국 독립에 바쳤다.
당시 고려혁명군은 3·1운동 이후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이 연합해 결성된 무장 조직이었다. 선생은 제3연대 제3대대에서 중대장과 부관, 교관을 맡아 군사와 정치 교육을 이끌며 독립전쟁의 기반을 다졌다.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근거지를 옮긴 고려혁명군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훈련을 이어갔고, 1922년 연해주 해방전쟁에 참전하며 끝까지 항전을 멈추지 않았다. 총칼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조국을 향한 의지였다.
기록은 말한다. 그는 “순직한 사람, 부지런하고 간사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모든 이의 신망을 받던 인물”이었다고. 이 짧은 문장은 한 인간의 전 생애를 압축한다. 이름보다 삶이 먼저 기억되는 사람, 그것이 바로 김병무 선생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너무 많은 이름을 잊는다. 해방 이후에도 그의 묘소는 확인되지 않았고, 후손의 행방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정작 그의 흔적은 긴 세월 속에 흩어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은 역사적 응답이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러한 잊혀진 이름들을 다시 찾아내고 있다. 단순한 기록 복원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기를 건너온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며, 공동체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은 특정한 영웅 몇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역사”라며 “김병무 선생과 같은 분들의 삶을 다시 조명하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이어가야 할 책임”이라고 밝혔다.
고려방송: 임용기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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