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 리 비딸리 가브릴로비츠(1915~1999)를 기리는 특별전 개막을 계기로, 그의 외동딸이자 카자흐스탄의 미술사학자인 리 까밀라를 초청한 토크쇼 및 북콘서트를 개최한다.이번 행사는 오는 4월 8일 오후 2시, 광주 고려인마을 일원에서 열리며,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학문적 유산을 함께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카자흐스탄 지질학의 선구자 리 비딸리 특별전」과 연계해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한 과학자의 삶을 넘어,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이야기를 현재로 불러오는 의미를 지닌다.
리 까밀라는 강제이주와 유랑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2세다. 그의 회고록 「나는 자고배(혼혈인)다」는 고려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정체성의 흔들림과 삶의 궤적을 담아낸 기록으로, 시대의 상처와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역경을 기회로, 고난을 보람으로』 역시 한 개인의 서사를 넘어,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생존과 도전을 증언하는 책이다.
그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버지 리 비딸리가 있다. 그는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의 몰락을 겪으면서도 학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공업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하던 그는,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 속에 휘말린다.
늦가을, “24시간 내 이주 열차에 오르라”는 명령과 함께 가족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가까운 이가 체포·처형되는 비극을 겪었다. 리 비딸리는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한 뒤 두 달 가까이 가족을 찾아 헤맨 끝에 극적으로 재회했다.
그는 다시 지질학자의 길로 돌아갔다.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험준한 산악지대를 누비며 탐사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톰스크 공과대학 출신 지질학도 갈리나를 만나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인민의 적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두 사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고, 결국 카자흐스탄 지질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토크쇼에서 리 까밀라는 아버지의 학문적 여정과 가족의 삶, 그리고 고려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의미를 직접 풀어낼 예정이다. 독자들은 그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 속 문장을 넘어선 살아 있는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1937년 강제이주 이후 흩어졌던 고려인 후손들이 다시 모여 살아가는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한 과학자의 삶과 한 딸의 기억은 과거를 넘어 오늘의 이야기로 다시 호흡한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이번 행사는 학문과 예술,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만나는 자리”라며 “디아스포라 고려인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낯선 땅에서 시작된 한 가족의 이야기는 이제 광주의 한 마을공동체에서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기억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이어지는가를.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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