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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마을 그림이야기, 문 빅토르 작 ‘스베틀라나 1937’ 사각의 창 너머, 불꽃처럼 남은 이름 ‘스베틀라나’ 2026-03-23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또 하나의 깊은 울림이 더해졌다. 마을 산하 문빅토르미술관은 최근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 문빅토르 화백의 신작 〈스베틀라나 1937〉(73×91cm, 캔버스 유화, 2025)을 공개했다.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다. 한 여인의 얼굴을 통해, 한 세기의 침묵과 기억을 끌어올린 ‘역사의 초상’이다. 화폭 속에는 강제이주 화물열차의 창문을 떠올리게 하는 사각의 공간이 자리한다. 닫힌 듯 열려 있는 그 창은,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던 길 위의 시간을 상징한다.

그 안에서 한 여인이 가슴을 부여안은 채 서 있다. 떨리는 손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다. 무너져 내리는 삶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마지막 의지처럼 보인다. 그녀의 곁에는 작은 등잔 하나가 놓여 있다.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불꽃. 위태롭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다. 


그 불빛은 말없이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순간에도,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큐레이터의 시선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선다. 이것은 ‘말할 수 없었던 역사’를 형상화한 기록이다.

1937년 강제이주 기억은 숫자나 기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를 잃고, 이름을 잃고, 목소리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침묵 속에 남아 있다. 화폭 속 사각의 창은 그 침묵의 경계이며, 여인은 그 안에 머물러야 했던 존재다.

그러나 문빅토르 화백은 그 침묵 속에 하나의 이름을 새겼다. ‘스베틀라나’. 러시아어로 ‘밝아진다’, ‘떠오른다’를 의미하는 이 이름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빛의 언어다. 사각의 창 안에서도, 등잔의 불꽃처럼 끝내 꺼지지 않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인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그 시선 너머에는 어둠을 밀어내려는 작은 움직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가슴을 움켜쥔 손, 흔들리는 불빛, 그리고 사각의 창. 그 사이에서 작품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절망은 정말 끝이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이었는가.

문빅토르 화백은 오랜 시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다. 그의 작품은 예술을 넘어, 기록되지 못한 감정과 말해지지 못한 역사를 되살리는 ‘시각적 증언’이다.

이번 〈스베틀라나 1937〉 역시 그러하다. 이 그림은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시간이다. 국내 귀환 고려인 동포들의 삶은 여전히 그 사각의 창을 지나온 역사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다시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침묵을, 그 불빛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사각의 창 안에서 꺼지지 않은 불빛 하나, 그 빛의 이름이 바로 ‘스베틀라나’다.

고려방송: 양나탈리아(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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