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쟁과 병마, 그리고 이산의 아픔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순간이 이어졌다.지난 19일 신조야 광주 고려인마을대표를 비롯한 마을 지도자들은 폐암으로 투병 중인 남루이자(62) 씨의 집을 찾았다. 이들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과 위로금을 전달한 뒤,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의 곁에 조용히 앉아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로 채워졌다.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 출신인 남루이자 씨는 2019년 새로운 삶을 찾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입국해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건강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고 폐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힘겨운 회복의 시간을 견뎌내던 그의 삶에 또 하나의 시련이 찾아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고향에 남겨둔 가족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는 하루하루를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버텨야 했다. 전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현실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전해진 한 줄기 소식이 있었다. 손녀 남아니따(10) 양이 전쟁을 피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고려인 동포의 보호 아래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항공권을 지원하고 비자 발급을 도우며 아이의 안전한 입국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손녀는 2022년 3월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해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전쟁이 갈라놓았던 가족이 다시 만난 그 순간, 공항에는 말없이 흐르는 눈물만이 그 시간을 대신했다.
그러나 길어지는 전쟁 속에서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남루이자 씨의 병세는 점차 악화되었고, 현재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딸 엘리사 씨는 전쟁 이전 러시아 크림반도로 이주해 살고 있던 삶을 뒤로한 채, 어머니를 찾아 길을 나섰다. 소치와 타슈켄트를 거쳐 인천까지 이어진 여정은 꼬박 3일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긴 여정 끝에 광주에 도착한 그는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어머니 병세가 회복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이날 마을 지도자들의 방문은 단순한 위문을 넘어선 것이었다. 전쟁과 질병, 이산의 고통 속에 놓인 한 가족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전하는 공동체의 따뜻한 약속이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고려인 동포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지만 서로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가 지켜온 공동체의 힘”이라고 말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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