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세상
-
우리들의 아버지
동이 트기도 전신발 끈을 바짝 동여매고 나가는아버지의 등 뒤에는 어느새바람과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다녀올 게.안개에 젖은 듯 왠지 축축한 그 말에는 세상길 빗물 가득 고일지라도그럼에도 머뭇거리거나길 잃지 않고저녁이면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약속이었다 무심했고, 근엄했고그래서 늘 퉁명스러웠던 사람 자식들 사랑은 다 아내...
2022-02-24 김동국
-
섬
외로울 거라 생각지 마라늘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그대의 울타리가 되나니그 울타리 속 그대가곧 나이기도 하나니외로울 거라 생각지 마라서로의 영혼이 진정한 소리를 듣기 위해준비된 침묵의 거리당신과 나의 꼭 그만한 거리
2022-02-17 김동국
-
구두와 자리
산등성이 외딴 의자가로등이 애써 비추고누군가 지친 영혼 가슴으로 받아 내산어머니가 어렵사리 지켜내던 의자.구두굽이 어지러이 호령하며말굽보다 친절한 발굽이진실을 능멸하여 이겨대고 그 발 아래 부모와 형제들의 현흔이 쌓여가고갈 곳 없는 민초들의 등짝에는 피고름이 맺혀 가는데결국에는 나라마저 정지를 잃는다면천추의 한...
2022-02-14 김동국
-
그 가을의 오후
베란다 쪽에서들어온 빛이 바닥의 먼지들을만지고 있다 빛에 닿지 못한응달진 것들은 가벼이 날아올라고인 침묵을 건너간다 그늘을 바깥으로꺼내가는 소리에창밖을 기웃거리는음지식물들이어둠속으로 고개를파묻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 온풀 여치 한 마리가 따갑게 파고드는쓰린 노래로 고여 있던 기억을흔들어 댄다쓰르륵 쓰륵.
2022-02-10 김동국
-
만어사 미륵바위
난바다 떠난 걸음 인연인가 멈춰 서서아가미 닫은 채로 탐진치 꺾는 순간 한맛비 너덜겅 치니경쇠 소리가 법문이다 수많은 고기떼가 이 골 저 골 누워서적묵寂默 속에 한근심 풀어내니 다 부처라 상영산上靈山 젓대 가락에돌미륵 눈 살그미 떴다
2022-02-04 김동국
-
외 등 外燈
월남사지 가는 길 인적 뜸한 고샅길처마 끝에 풍경風磬 걸 듯 담장 밖에 갖다 내건갓을 쓴 노란 알전구, 어둠을 밝힙니다 별빛이 하나 둘 순아순아 잠이 든 밤눈 맑은 비구니의 지붕 낮은 집 뒤에서알전구 그 둥근 보시布施,무명無明을 닦습니다
2022-01-27 김동국
-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마침내그리움이온 몸으로 매달리는 것은 기다림이다. 날개를 펼치며날개깃에 닿는 바람이당신을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라 믿는기다림이란아직도당신이 띄울수백의, 아니 수천수만 통의 편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애처롭게등불을 들고 문 밖에서 서성이지 마라밤하늘을 가리키며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고도 말하지마라.언덕에 서서제 그림...
2022-01-20 김동국
-
풍경을 제작하다. 2
바람에 떠난 산이 돌아와접혔던 하늘을 밀어 올리면숲의 적멸은 단단하다 풍경의 숨소리 단비를 부르고자작나무 맥박에선여린잎 애인들이 자라고 나무들 강물에 제 몸을 비추며하루를 헹구는 시간물속깊이 고요를 길어 올린다
2022-01-14 김동국
-
승 화
땅에 몸을 대고 산은 울음 속에서 빛난다 비 온 뒤 산을 오르며눈물 흘리는 모습 가끔 본다누가제 몸 깊은 곳에 머금은 아픔오솔길까지 풀어 놓았나 그 설움 진 소리가 하늘도 나무도 나도 씻어주는 휘바람새 울음소리메아리 되어 고요를 덧칠한다 삶의 고랑마다 줄줄이 가슴 파일수록발부리를 촉촉이 적시며자박자박우리는 산처럼 일어서 ...
2022-01-07 김동국
-
호수의 한낮
햇살 고운 한낮한참을 걷고 또 걷는다문득 따스한 햇살 아래 서서지나온 시간들을 더듬으며푸른 호수의 고요를 가만히 내려다 본다온몸 가득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왔던 시간들토닥토닥 등 어루만지듯 부드러운 손길처럼연녹빛 긴 물자락 펼쳐 놓은 그 위로때로 다가선 오색 물고기 친구들이제껏 난누구와 함께 걸었을까무엇을 하고 살았...
2021-12-30 김동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