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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슬포슬 삶은 하지 햇감자의 치유 이야기 - 남도치유한식연구회 회장 장영애
  • 기사등록 2025-06-03 17: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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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6월이 시작되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이 시기는 감자 철이다. 특히 하지 무렵 수확하는 ‘하지감자’는 제철 감자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지(夏至)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절기로, 이맘때 수확하는 감자는 노지에서 햇볕과 땅의 기운을 듬뿍 받은 싱그러운 식재료다. 이번 하지는 6월 21일지만 시장에는 이미 햇감자가 출하되어 있어, 지금은 그 맛과 향을 가장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시기다.

 

하지감자는 이름처럼 ‘제때’ 만나는 감자다. 현대에는 품종 개량과 온난화, 시설 재배 등으로 감자의 출하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지만, 그럼에도 제철 감자의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 싱싱한 감자의 껍질을 벗기면 은은한 흙내음과 함께 속살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이 촉촉한 감자 한 알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마음을 치유했던 존재였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가족이 소규모가 아니었다. 대가족이 함께 살았고, 농번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들일을 나갔다. 뜨거운 햇볕 아래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다 보면 금세 배가 고팠고, 그 배고픔을 달래주는 가장 현실적인 음식이 바로 감자였다. 구황작물로서 감자는 그야말로 ‘생존의 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온기와 정이 깃들어 있었다. 삶은 감자를 들고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소중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감자는 단지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을 넘어선다. 고령자들에게는 감자 한 접시가 곧 추억의 창이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도시락에 싸갖고 다니던 감자, 한겨울 군불에 구워 먹던 감자, 이웃과 나눠 먹던 감자는 그 시절의 애틋함과 공동체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감자는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정서의 매개물이고,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치유의 음식이다.

 

지금도 그 감성은 유효하다. 특히 햇감자는 영양과 맛, 신선함이 모두 살아 있어 다양한 조리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감자탕이나 찜요리, 볶음, 조림 등으로 변주가 가능하지만, 가장 감자의 본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단연 ‘삶기’다.

 

감자를 맛있게 삶는 데도 정성이 필요하다. 첫째, 감자는 껍질째 찬물에 삶는다. 끓는 물에 넣는 것이 아니라 찬물에서부터 서서히 온도를 올리며 삶는 것이 감자의 단맛과 부드러움을 살리는 비결이다. 이때 소금을 조금 넣어주면 감자 본연의 맛이 살아나고, 설탕을 약간 넣으면 으깨지는 것을 방지하면서 은은한 단맛도 덧입힐 수 있다.

 

삶는 시간이 중요하다. 센 불에서 끓이다가 중불로 줄여 15-20분간 조리한 뒤, 젓가락으로 찔러 부드럽게 들어가면 익은 것이다. 이후 물기를 버리고 약불에서 12분간 수분을 날리면 포슬포슬하고 고소한 삶은 감자가 완성된다.

 

 

삶은 감자는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버터나 허브, 크림 등을 곁들이면 더욱 깊은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삶는 물에 식초나 레몬즙을 한두 방울 넣으면 감자의 색이 선명해지고, 향신료를 살짝 더하면 입안 가득 향긋한 여운이 남는다. 이처럼 간단한 조리이지만, 그 안에는 음식에 대한 배려와 정성이 담긴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풍요롭고, 감자는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니게 되었지만, 감자가 지닌 의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감자는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누구에게나 추억을 안겨주는 음식이다. 특히 고령자에게 감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결되고, 젊은 세대에게는 부모 세대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음식이다. 그런 감자를 선물하는 것은 단지 한 봉지의 식재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6월, 햇감자가 제철인 이 시기. 가족에게, 이웃에게, 혹은 마음이 머무는 누군가에게 감자 한 봉지를 삶아 선물 해보자. 삶은 감자의 부드러운 식감 속에서 잊고 있었던 감정이 살아나고, 감자의 따뜻함이 온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감자 한 알의 위로, 그것이 바로 음식이 가진 가장 순수한 치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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