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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목민심서는 4월20일 완성 밝혀져
  • 기사등록 2008-04-19 0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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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은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완성된 날이 4월 20일 이라고 밝혔다.

강진문화재연구소 양광식 소장은 다산의 자료를 모아 둔 ‘여유당 전서’에 의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는 1818년 3월 16일 (暮春旣望, 양력 4월20일) 유배지인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완성되었으며 제자 이강회(李綱會)가 도운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목민심서는 12부로 각 부마다 6개의 조항으로 나뉘어 총 72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민관이 지켜야 할 기본자세와 실천 윤리를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정약용 선생이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직접 목격한 지방행정의 문란과 부패상이 목민심서 저술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또한 목민심서에는 시대를 초월한 그의 애민사상이 한국판 사회 계약론으로 주목 받을 만큼 민주주의 세계관이 녹아들어 있다.

목민(牧民)은 생활능력이 없는 백성에게 생활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고 심서(心書)는 생활의 길을 열어주고 싶었지만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몸이라 몸소 실행을 할 수가 없어서 심서라 한 것이다.

1표인 경세유표(經世遺表)는 나라경영의 지침서이고 2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지방 관료들의 행정길잡이이며 흠흠심서(欽欽心書)는 법조인의 지침서이다.

다산은 이 세권의 저서를 완성함으로써 평등사상과 정의사회 그리고 사회규범의 기준을 만들었다.

강진군 임경용 기획정책실장은 “목민심서의 날이 고증을 통해 밝혀진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군 산하 공무원과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뜻 깊은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은 1801년11월22일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어 1818년8월29일까지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후학을 가르치고 목민심서 등 6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 했다.

또한 도암면 귤동마을 뒷산은 많은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다산(茶山)으로 불렀는데 선생은 이 산의 이름을 호로 사용했다. 한편 18인의 다산(茶山) 제자들은 해배 전날에 다신계(茶信栔)를 조직하여 스승을 기리고 차문화를 계승하였다.

강진군에서는 4월 20일을 기념하기 위해 다산을 숭모하는 뜻에서 특강과 함께 추모의식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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