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군[郡]이 되다.
고흥군이 오늘(1월 30일)부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군[郡]이 됐다.
목포-광양 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었어도 들고 나가는 나들목(IC)이 없으면 고속도로는 있으나 마나하는 존재가 된다.
고속도로가 지나고 나들목(인터체인지)이 생기면 전[前]에 없었던 괄목할 만한 역동적[力動的]인 변화가 생기게 된다.
우선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 져 인구의 변화는 물론 생활 패턴과 산업개발, 지가[地價]변화를 가져오고 시공[時空]을 초월해 원근성을 좁혀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극복하고 가까워 진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잘 되고 물류[物流]가 활발히 이루어 진다는 것은 그 만큼 발전과 번영을 구가[謳歌] 할 수 있는 잠재력[潛在力]과 가능성[可能性]을 내포하고 있다.
실재로 고속도로가 통과하지 않는 전국의 시,군이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시,군에 비해 발전의 속도가 늦고 미개발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개통[開通]의 시간차가 지역발전의 격차[格差]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30)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흥IC가 개통됨으로서 고흥군이 명실공히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군이 됐다.
오늘(1월 30일) 남해고속도로 고흥IC가 개통되기 까지 고흥군민들이 얼마나 애가 타고 많은 고생을 했는가? 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목포-광양간 남해고속도로 개설[開設] 과정에서 고속도로가 고흥땅 동강면 한천마을을 지나면서도 고흥IC가 없는 고속도로를 설계[設計]하고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당시 한국도로공사 설명에 따르면 “목포-광양간 고속도로의 고흥군 통과구간은 3.7km에 불과하고 국도 15호선과 교차하는 양쪽 터널사이가 800m에 불과해 고흥IC 설치공사 자체가 어렵다”고 난색[難色]을 표명하였고 고흥군청도 처음에는 한국도로공사의 주장에 순치[馴致]돼 고흥IC개설 불가[不可]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멍청하고 무능할 정도가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하는 고흥군청의 고흥IC에 대한 인식[認識]과 행동이다.
고흥군청은 목포-광양간 남해고속도로 상에 고흥IC가 누락[漏落]된 사실을 알고서도 초기에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꾸물거리며 “고흥IC 대신에 고흥 진입로 인근의 뱀골재 도로선형을 개량[改良]해 국도 2호선과 연결할 수 있도록 특별교부세 10억원을 확보한 뒤 용역설계를 마치고 순천방향으로 통행하는 대체 우회도로를 추진하기로 하는 등” 고흥IC 추가개설에 대해서 부정적[否定的]이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고흥땅을 지나가는 고속도로 통과구간이 3.7km에 불과하며 인접 벌교IC가 가깝고 지형적 특색에서 고흥IC 개설이 어렵다고 고흥IC를 설계 당시에서 부터 아예 누락시킨 것은 한국도로공사의 명백한 잘못이고 이에 순응[順應]했던 고흥군청은 몽매[蒙昧]하고 바보스런 행각이다.
고흥군민들은 뿔났다. 명색[名色]이 고흥군이 7만이 훨씬 넘은 인구를 가진 지역인데도 고속도로가 지나면서 나들목이 없다고 하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고흥군민들이 힘을 모으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목포-광양간 남해고속도로상에 고흥IC가 설계에서 누락되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뒤 늦게 알게 된 고흥군민들은 엄청난 실망[失望] 속에 거센 항의와 반발[反撥]이 뒤따랐고 이어서 고흥군 내 양심[良心] 세력이 주도해 2008년 12월 4일 고흥나들목 범군민추진위원회(공동의장 정순열, 신현종)를 결성[結成]하면서 고흥군청과 전라남도, 국토해양부에 고흥IC개설을 강력히 요구하게 된다.
동시에 고흥군민들이 "목포-광양간 고속도로상에 고흥나들목을 개설하라”고 서명운동[署名運動]에 들어가는 데 그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3만을 훨씬 넘어 고흥군 역사상 유례[類例]가 없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남해고속도로상에 고흥IC가 개통에 이르기 까지 고흥군민들과 고흥나들목 범군민추진위원회가 이룬 공적[功績]은 세월을 넘어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