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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자산
  • 기사등록 2011-02-22 11:33:23
  • 수정 2014-11-25 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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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박영동] 예전 시골 마을에 들어서면 동네 어귀에서부터 어린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배가 부른 아낙들과 골목을 바쁘게 뛰어 다니는 개구쟁이들의 수다가 그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농촌은 적막한 중에 이따금 유모차에 아이들 대신 농기구를 싣고, 다리를 절거나 허리를 굽힌 할머니들의 모습이 태반입니다.

최근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최하위로 떨어지고, 이대로 간다면 2100년도에는 인구가 반 토막이 나고 2200년도에는 줄어든 인구로 인하여 국가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다 우리나라가 이지경이 되었을까요.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인구 억제정책으로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떠들어 대더니, 이제는 세 자녀 이상의 가족에게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보조금을 주고 온갖 특혜를 주겠다고 해도 시큰 둥 합니다.

이는 단시간에 이룬 물질문명의 풍요와 상상을 초월한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이와 보조를 같이 하려는 젊은 세대의 맞벌이, 부모의 사랑과 집안의 모든 것을 독차지 하면서 자라난 세대의 자녀에 대한 희생의 회피, 공교육의 쇠퇴와 더불어 비틀어진 사랑이 변하여 왜곡된 천정부지의 사교육비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체계인 초. 중. 고. 대학. 대학원등 18년여에 걸친 교육 과정은 지성과 인격을 함양하는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실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기계적인 패턴에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 순위를 부여하는 수능 시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에게 능력과 재력 등 부문별로 등급을 부여하는 사회 현상이 다반사인데, 이들은 사람에게 수치상의 풍요에 얽매이게 하고 은연중 탐욕과 편협 된 사고방식을 조장하여 정작 인간적인 삶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병폐를 수없이 양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좁은 국토에 원재료의 보유는 빈약하고 농산물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경쟁력이 떨어져 위태로운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밤낮으로 울리는 자동차의 굉음과, 휘황찬란한 유흥주점의 불빛, 한없는 축제의 연속,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외식, 넘치는 영양분이 비축된 위태로운 비만 등이 팽배하여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회현상의 원천적인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동족상잔의 폐허위에서도 허리띠를 졸라 후세를 위한 교육열에 불탔던 선현들과 이에 보답하려는 후학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어우러져 그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보여 집니다.

자원 빈곤국인 우리가 세계 10위이내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상 2미터 아래에 있는 최대의 자산인 인적자원에 대한 살을 깎는 인고의 세월과 열정적인 투자가 뒷받침이 된 것입니다.

이 풍요 뒤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후세를 양성하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우리세대에 최 빈곤의 현상이 곧바로 닥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시바삐 사교육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공교육을 확고하게 세우면서 젊은 세대에게 교육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막론한 공공기관,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 등을 망라한 사업체들이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자녀가 같이 출근하여 직장 내 보육 시설에 안심하고 맡기거나, 아니면 각 자치단체별로 지역을 책임지는 대규모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노령화의 인구를 저렴한 인건비로 육아에 투입하고 젊은이의 창의력과 노동력을 생산에 투입 한다면 기가 막힌 역할 분담뿐만 아니라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풍토가 돈독해 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평화로운 신심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안심하고 출산을 서두르게 될 뿐 아니라, 노령인구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이 순풍에 돛 단 듯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돈된 교육시스템에 의하여 양육된 후세들이 무궁무진한 창의력과 연구열을 발휘하여 세계 1위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그를 바탕으로 다른 관련 분야에 효과적으로 적용을 한다면 또 다른 신기술 개발에 파생적인 효과가 거듭 될 것이고, 한사람의 인재가 수십만 수백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급기야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세계를 지배하는 꿈같은 일이 어렵지 않게 펼쳐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희망적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산만하게 얽혀있는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보다 진전되고 효과적인 보육시스템이 새롭게 개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 남북의 분단 상황에 대하여는 보다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우선은 눈앞에 다가오는 출산율의 저하와 교육 환경의 악화는 절대적으로 우리 민족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이를 타개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우리들 제 각각 집에 들어서보면 제일 소중한 보물이 사랑하는 자녀이고 가족이듯, 우리나라 최고의 자산은 우리들 자신이고 나아가 후세를 위한 교육제도의 확립이 바로 요체인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유랑하던 유태인은 2천년에 걸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제도를 수립하여 후세를 위한 참다운 교육에 매진한 결과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를 석권하여 버렸던 것입니다.

교육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어두워 후세의 교육문제를 자신의 순간적인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여 은연중 영원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광명정대한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쏟은 후세양육으로 다음세대의 풍요를 예약 받느냐는 우리들 자신의 몫인 것입니다.

요즈음 가정의 분화가 거듭되면서 이미 예전의 대가족제도는 붕괴 되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포함한 상상을 초월하는 양육비와 갈수록 높아가는 결혼비용은 물론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새로 가정을 꾸려가는 신세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이로 인하여 후세를 위한 가족계획에 대한 두려움으로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점은 다음세대의 낙관적인 삶을 위협하고 국가의 장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어렵사리 출산한 자녀들에 대하여 신세대의 교육 방식은 아낌없는 사랑의 한계선을 넘어 마치 목숨을 걸어 놓은 듯한 편애로 인하여 상대방의 잘못과 부족함에 대하여 이해를 하고 상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덕목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학생이나 학부형이 공동으로 이기심에 멍들어버리는 기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사회생활에 역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형벌의 의미가 민주적인 절차의 요구와 정치적인 해석에 의하여 갈수록 관대한 쪽으로 흘러감에 따라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에도 버겁게 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상아탑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생활의 교사와 스승의 입지가 흔들리고 학생과 제자의 본분이 혼란스러운 교육 환경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갈수록 떨어져 가는 출산율이나 노령화의 문제보다도 학원의 정상적인 운용이 곤란한 현실이 오히려 국가의 장래를 흔드는 가장 비관적인 현상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사회에서 죄악을 저지른 범법자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참회와 회한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비교적 강렬하였다고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중심으로 해석하는 아전인수 격인 사람들의 주장이 팽배하고 변형된 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최근 교사의 학생에 대한 체벌에 대하여 신문지상이나 교육현장에서 첨예하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상호간에 그 개념에 있어서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쟁만 가중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교사와 학생, 스승과 제자, 폭행과 체벌 등에 대하여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서당에서 이어지는 교육에는 반드시 회초리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교사와 학생보다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보여 지며, 신체적인 벌을 내리는 스승의 마음은 제자가 올바른 정신으로 바르게 자라고 배우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깔려있었으며, 벌을 받는 제자는 신체적으로 울려오는 아픔으로 스승에 대한 경외심과 이번 잘못을 극복하고 앞으로는 더욱 분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겠다는 각오와 반성이 함께 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불가에서도 질서를 바로 잡는 지장보살이 두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형상을 하고서 험상스런 철퇴를 들고 대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을 것입니다.

고도의 수련으로 갈고 닦은 스님들의 선방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체벌의 한 형식인 “죽비”가 등장하고 이따금 정적을 깨뜨리는 파열음이 울리는 것은 또한 정신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여 집니다.

어린 학생들의 가슴속에도 물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정돈된 상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을 넘어선 성인의 의식이나 종교적으로 성숙한 분들의 의식이나 스승의 경지만큼 충분히 성장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왕성한 혈기의 작용으로 본능적인 움직임이나 판단에 휘둘리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승이 보았을 때 제자의 발걸음이 올바른 방향을 잃고 좋지 못한 곳으로 향할 때 이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데도 방치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순오지(旬五志)에 “추경정용(椎輕釘聳)”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아 오른다” 다시 말하면 “윗사람이 엄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제 멋대로 한다”라는 뜻인데 온갖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세대 중의 하나인 현재의 부모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그 풍요의 과실을 아낌없이 받아온 현재의 자식과 제자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무너지는 현실에 있어 괄목상대하여 알아들어야 할 꼭 필요한 덕목으로 보여 집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스승의 체벌이 이때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제자가 스승의 경고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행동한다 하여 교육적인 체벌을 넘어선 폭력의 상황까지 가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승과 제자와 교사나 학부형, 교육을 시키는 사람이나 교육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폭력이나 폭행” 또는 “훈계나 체벌”의 한계를 정립하여 올바른 교육현장을 새롭게 조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시비에 휘말리기 싫어 명백하게 잘못되어가는 제자를 방치하는 교사나, 가르침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스승의 체벌방지라는 방패를 앞세워 통상적인 학생들의 범주를 벗어나는 방종을 마음대로 자행하는 학생들이 늘어만 간다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될 것입니다.

상아탑의 무질서는 그대로 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에는 무너지는 물줄기를 감당 못하여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사약이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형성된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그림문자를 자세히 해석하여 보면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원초적인 요인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되는 내 자식에 대한 극도의 편애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사자도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혹독하여 언덕에서 새끼들을 굴려 살아남은 새끼들만 양육한다 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겨울이 닥쳐오면 먹이가 부족하여 두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만 키우는데 선별하는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역량에 맡긴다고 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맹목적으로 왜곡되는 현장에서부터 스승과 제자의 갈등이 일어나고, 나아가 죄를 지은 자와 벌하는 자의 알력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는 세대간, 계층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3월이면 신학기가 시작되는데 학부모와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공동으로 자신을 체벌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구조의 “사랑의 매”를 만들어 선생님께 스스로 제출하고, 스승은 이를 개인별로 교실에 비치를 하였다가 학생의 체벌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제자와 스승이 판단하는 수준의 체벌의사를 교환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식( 체벌 횟수, 부위, 불원이면 불체벌)으로 체벌을 가하고, 스승과 제자가 공동으로 서명한 “체벌(불체벌)확인서”를 학부모에게 발송하면 학부모는 자신의 의견과 함께 서명 날인하여 학교에 제출하고, 스승은 이를 보관하여 제자의 수업성과에 반영하는 민주적인 제도의 실험은 어떠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교육현장의 질서를 세우는 일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확고하게 세우는 시급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광활한 대륙의 강대국들과 섬나라에 의하여 둘러 쌓인 조그만 반도의 나라 그것도 둘로 나뉘어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이 세계사의 거친 파고를 넘어 민족중흥의 길로 향하는 지름길은 오로지 인적자원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깨달음으로 교육환경의 올바른 정립과 함께 이루어지는 지상 최고의 자산에 대한 정당하고 과감한 투자만이 생존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불편한 듯 보이거나 힘들게 보이지만 올바른 길을 향하는 우리의 땀과 눈물이 다가오는 세대에 물려줄 황금들판의 참다운 밑거름이 될 것을 간절하게 기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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