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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천사들
  • 기사등록 2010-11-08 13:57:56
  • 수정 2014-11-25 00: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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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박영동에세이] 조석으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은 녹음을 뿜어내던 나뭇잎들에게 스산한 입김으로 건드려 이제 고요히 떠날 때가 되었음을 사뭇 재촉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일어나는 거친 바람에도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붉히거나 힘이 다하여 샛노랗게 질리고 만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는 모르지만 두서없이 지는 나뭇잎들은 가차 없이 땅바닥이나 도로에 떨어져 이리 저리 쓸리면서 정처 없는 발길로 어지러이 구른다.

사람들은 낙엽을 밟고 길을 걸으며 한순간의 감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 시절이 되면 누구도 모르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써 쓸어 담으면 또 떨어지고 쫒아가 쓸어 담으면 또다시 지천으로 떨어지는 낙엽들이 정작 아침이 되면 도로에 하나도 남지 않고 치워져 있는데, 어두운 새벽부터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지만 혼자서 이겨내 이를 쓸어낸 사람들의 손길이 미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로의 낙엽만이 아니고 누군가 양심의 가책 없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나 쓰레기들을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치우는데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어려움을 알 길이 없다.

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나 몰래 맡은 청소구역을 치우는데 바쁜 아들의 눈물겨운 이야기, 한없이 치워도 끝이 없는 낙엽 때문에 부부가 합심하여 작업하는 현장을 술 취한 운전자가 무책임하게 일으킨 사고 소식은 우리 가슴을 안타깝게 하는 일들이다.

어딘가 갈 곳도 없지만 누군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역전의 공간에 추운 밤을 지새우는 외로운 숙박인들,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한잔을 대접하는 자원 봉사자들 또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분주하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다투고 때리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곤 한다.

어느 날 역에서 귀향하는 자식을 마중 나가 기다리는 동안 술을 마신 채 담배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담배 10갑을 사다가 사이좋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나중에서야 이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짓이라고 한사코 돌려주려 하였으나 끝내 거절 하였다.

찬이슬을 맞은 채 길가에 피어있는 가냘픈 화초나 척박한 도로가의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나 마지막 힘을 다하여 피운 꽃들도 우리를 놀라게 하였는데, 어차피 이 계절이 되면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허리가 굽어진 채 손수레가 뒤에서 밀고 가는 형국으로 폐휴지 등을 가득 싣고 힘들게 도로를 건너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예 감아버린 눈으로 앞에 조그만 바구니를 놓아둔 채 지나는 행인들을 향해 하모니카를 불어대는 사람도 우리를 쓸쓸하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여 전 “밥 퍼 나눔” 봉사활동을 갔을 때 배식 받은 밥과 반찬을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에다 똑같이 반으로 나누어 가방에 담는 할머니를 보고 더 주겠다고 했음에도 자존심 때문인지 극구 사절하고 반쪽의 식사만 하고 총총히 사라진 할머니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반으로 나눈 밥과 반찬이 자신의 저녁인지, 아니면 손주의 점심인지, 아니면 집에 누워계신 영감님의 점심인지, 무척이나 궁금하였지만 끝내 물어볼 수는 없었다.

올봄에 노인 위안잔치에 나오신 분들의 식사 대접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약간의 선물을 나누어 드렸는데, 수가 너무 많아 미리 받고 나가신 할머니가 또 다른 할아버지를 대동하고 다시 들어오는 등 여러 차례 오가는 사람들 일부는 모른 척 하고 일부는 혹여나 부족할까봐 거절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선물이 남았다.

그럴 줄 알았다면 모른척하고 다 줄 것을 뒤늦은 후회가 앞선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가 질주하는 순간 길가에 서있는 우체통을 걸레로 정성껏 닦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

일반 사람들 같으면 닦아도 먼지가 끼고 때가 묻을 우체통을 아예 관심도 갖지 않을 터인데도 누군가의 소중한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닦아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이따금 식사를 위하여 백반 전문 식당에 즐겨 가는데 갈 때마다 잔잔하게 감동을 느끼곤 한다.

요사이 길가의 화분에 이미 배추들이 자리 잡아 튀는 물가를 실감케 하는데도 여러 가지 반찬을 정성스레 준비하고 찌개와 국까지 주는 아주머니는 어디로 보아도 고맙기 이를 데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사이 짬을 내서 누군가 주문한 백반을 헐레벌떡 배달을 가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도 많은 종류의 반찬으로 모든 사람들 입맛에 일일이 맞추어 대접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없는 공덕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해 놓고 온갖 귀한 것과 맛있는 것들을 모두 가졌음에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행복하지 못하였고, 영생불멸의 야욕으로 불로장생탕을 계속하여 과음한 나머지 수은 중독으로 인한 환시 환청 현상으로 고생하다 오히려 먼저 사망하였다.

시황제가 지은 아방궁이 아무리 좋다한 들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과 그를 지탱하여 균형을 잡아주는 작은 돌과 지반이 튼튼하지 못하면 힘없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인 “삼일신고”는 6세 단군 달문(기원전 2083-2048)재위기간 36년간의 사이에 ‘신지발리’가 지은 총 366자의 제문으로 깜짝 놀랄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에 일부 순서를 바꾸어 소개하면 “너희 땅이 스스로 큰 듯하나 한 둥그런 세계니라 땅속불이 울리어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로 되었고 이에 보이는 모양을 이루었나니라 일신(천신)께서 김(기)을 불어 싸시고 밑까지 해의 빛과 더움으로 쪼이시니, 기고 날고 되고 헤엄하고 심는 물건이 번식 하니라.” ”천은 신국이라 천궁이 있어서 온갖 착함으로 섬돌 삼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나니 일신께서 계시는 곳이요, 신장과 선관들이 모셨나니 크게 좋으며 크게 빛난 곳이라. 오직 성품을 트고 공적을 이룬 이라야 널리 영원토록 쾌락을 얻을 지니라”라고 하였다.

어두운 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 할지라도 단지 천심을 잃지 않아 마음이 비워지고 자신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의 문을 열어 착하고 정직하여 공적을 이룬다면 천국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미래의 천사들”이 될 것이다.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도와주고 부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천국의 주춧돌을 다지는 일일 것이기에 겨울이 멀지 않은 시절에 장차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온정의 손길이 미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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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견(총 1 개)
  • leegunak2010-11-10 10:17:57

    사색할수 있는 계절입니다. 자연이야말로 스스로를 황홀하게 불태우는 사랑법을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때를 기다리며, 그 때가 언제인가를 알며, 꽃 피울 때를 알며 인내하여 열매 맺을줄 아는 자연의 사랑법..사람도 자연과 같이 순응하며 그런 사랑을 할수 있다면 우리 미래도 더욱 행복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글 게속하여 부탁 드립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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