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오는 6월 14일, 전남도농업박물관이 주최하는 전통 손 모내기 체험이 열린다. 참가자들은 모 찌기, 모 운반, 모심기 등 과거의 손작업 방식으로 벼농사 초입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농사 체험을 넘어, 공동체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이 단지 ‘힘들었던 과거의 노동’을 재현하는 데 그치거나, 기계화의 편리함만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획된다면, 전통이 품고 있는 공동체적 가치와 인문학적 함의를 온전히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모내기는 가장 대표적인 협업의 현장이었다. 넓은 논에 일정한 시기에 일손을 집중해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품앗이’와 ‘두레’가 작동했다. 이웃끼리 서로의 농사일을 도우며 상호부조의 윤리를 실천했고, 한 사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였다.
노동은 세대와 성별에 따라 역할이 분담되었다. 남성은 논을 갈고 물을 대는 등 물리적 힘이 필요한 작업을 맡았고, 여성은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는 세밀한 작업을 담당했다. 어린이들은 모를 나르는 심부름을 하며 일손을 보탰다. 그날의 밥상도 함께였다. 밥을 나누며 같은 공간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공동체 연대의 상징이었다.
특히 전남 지역에서 모내기와 음식문화는 독특한 결합을 이루었다. 이 지역 평야 지대에서는 모내기철에 ‘모밥’이라 불리는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모밥은 일에 참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까지도 함께 먹는 등 공동체의 밥상이었다.
모내기밥상에는 흑산도산 홍어가 종종 올랐다. 홍어는 겨울과 봄 사이 영산포 수산시장을 통해 저장되어 있다가 모내기철이 되면 인근 농가로 공급되었다. 대개 7kg이 넘는 대형 홍어들은 행사를 치르는 가정 외에는 수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수산물 가게에서는 이것들 모내기철까기 저장해 두었고, 그사이에 발효가 되면서 저장 기간이 길어졌다.
홍어는 저장 중 자연스럽게 삭아 알칼리성(pH 8-9)의 강한 향을 내게 되었다. 모내기 일꾼들은 이 삭힌 홍어를 막걸리와 함께 먹었는데, 산성(pH 3-5)의 막걸리와 알칼리성 홍어의 조합은 단순한 맛을 넘어 생리적 중화를 이루며 피로를 달래는 효과를 지녔다. 이런 식문화는 지역 생태와 계절, 노동의 맥락 속에서 탄생한 실용적 지혜이자 지역 고유의 미식 문화였다.
뿐만아니라, 모내기 날에는 ‘오다마’라 불리는 커다란 사탕이 일꾼들에게 하나씩 지급되었다.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당분을 빠르게 보충해 노동으로 인한 체력 소모를 회복시키기 위한 전통적인 에너지 보충식이었다. 이처럼 전통 농업은 노동, 생태, 음식, 공동체가 긴밀히 엮여 하나의 유기적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 농업은 기계화와 자동화를 통해 이러한 공동체적 경험을 점차 잊게 만들었다. 손 모내기 체험은 과거의 농사 기술을 단순히 ‘불편했던 일’로 치부하거나, ‘지금은 이렇게 편해졌다’는 기계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공동체가 무엇인지,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것이 왜 중요한지 되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농촌이 고령화와 인구 감소, 공동체 해체 등의 위기에 직면한 현실 속에서, 모내기 체험은 지역 정체성을 되살리고 세대 간 소통을 유도하는 유력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전통 농사 체험이 단순한 ‘옛날 방식 재현’이 아니라, 전통을 현재화하고, 지역의 정신문화와 자연환경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기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남도농업박물관의 체험 행사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손 모내기를 통해 땀 흘리던 조상들의 노동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든 공동체 정신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전남도농업박물관에서는 이 점에 유의해서 의미 있는 체험의 장이 될 수 있게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