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일본 장례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꽃은 국화이다. 국화는 일본뿐만 한국, 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장례식 꽃이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크로아티아에서는 국화가 고인에 대한 애도의 상징으로 장례식에 사용해 온 오랜 전통이 있다.
국화는 이처럼 장례식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일본의 장례식에서 국화가 사용된 배경에 대한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되게 된 배경에 대해 ① 국화의 향기가 분향(焚香)하는 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② 일본 황실 문양이 국화인데서 유래되었다. ③ 국화의 꽃말이 ‘고귀’이기 때문이다. ④ 제단에 국화를 장식하는 문화가 일본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등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는 설만 있을 뿐 근거나 출처가 없다. 장례 관련 책이나 논문에서도 국화의 사용 배경과 관련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장례식에 국화가 사용된 배경으로 지적된 것들을 검증해 볼 필요성이 있는데, ①의 경우 국화 향과 분향에 사용되는 향의 성분은 다른 것이 많다. 설혹 향의 성분과 향이 비슷하다 해도 국화가 분향하는 향을 대신한다면 향이 사용되지 않아야 하는데, 국화를 사용해도 분향의 향은 그대로 사용되므로 타당한 이유로 꼽기는 어렵다.
②와 관련해서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년) 후기부터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1192년)의 초반에 일본에 도입된 외래종 국화가 일본 황실의 문양이 된 것은 고도바상황(後鳥羽上皇)의 시대인 1183년이다. 상황(上皇)이 국화의 모습이나 형태를 매우 좋아해 문양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후의 천황들도 국화의 문양을 계승해, 1869년에는 공식적으로 황실의 문양이 되었다. 국화는 현재에도 황실의 문장이며, 일본 여권에도 국화 문양이 사용되는 등 일본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황실문양이라는 이유로 장례식 사용되었다는 근거는 없고, 장례에서 국화는 황실의 꽃보다는 불교의 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③과 관련해서 국화의 꽃말을 찾아보면 대표 꽃말은 ‘고귀’, ‘고상’, ‘고결’이지만 색깔과 품종에 따라 다양하다. 예를 들어 빨간 국화는 진실, 노란 국화는 짝사랑·실망, 하얀 국화는 성실·진실이라는 의미 등 다양하다. 또 고귀한 뜻의 꽃말을 가진 꽃들은 국화 외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꽃말 때문에 사용되었다는 설은 좀 억지스럽다.
④의 프랑스 장례문화가 도입되어 국화가 사용되었다는 설은 장례 제단의 꽃장식 문화 자체가 서양의 문화적 색채가 강하다고, 프랑스에서 국화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좀 더 논리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기독교나 가톨릭 인구수가 매우 미미하고, 프랑스 장례문화에서 도입되었다는 근거 또한 없다. 따라서 일본 장례식에서 국화가 사용된 배경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국화의 이용문화, 국화의 생산과 소비문화, 장례식에서 국화꽃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 등 다른 관점에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국화 이용문화를 검토하면 국화는 옛날 중국에서 유래한 난초, 대나무, 국화, 매화라는 4군자의 하나이자 불로장수의 묘약이라는 인식이 일본에도 전해졌다. 또한 일본에서는 음력으로 양수가 겹치는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 또는 국화절(菊節)이라 해서 국화꽃을 장식하고, 국화꽃을 띄운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그때까지 사용되었던 음력이 양력으로 바뀌었고, 국화 또한 양력 9월 9일에는 개화가 되지 않은 시기가 되었다.
국화는 국화절(중앙절)에서 알 수 있듯이 가을철에만 개화하므로 과거에는 국화를 사용하고 싶어도 가을철 외에는 장례식에 활용할 수 없었던 꽃이다. 가을철에 개화하는 국화가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1920년 미국 농무성 소속의 와이트맨 가너(W.W. Garner)와 해리 어래드(H.A. Allard)에 의해 일장이 식물의 개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광주성(光周性) 연구가 바탕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와이트맨 가너와 해리 어래드가 광주성을 발견한 8년 후인 1928년에 광주성 이론을 적용해 아이치현(愛知県)에서 암흑 시트처리 재배가 처음 시도되었고, 1939년에 아세틸렌 램프를 사용한 개화 억제재배 시도에 의해 연말 개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중지되었고, 1947년 도요하시시(豊橋市)를 중심으로 억제재배(전조재배)가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이전까지는 가을 이후에 국화꽃을 구입하기 어려웠고 장례꽃으로 정착도 어려웠다.
한편, 1950년대 이후 국화는 전조재배에 의해 꽃을 구입할 수 있는 시기가 폭넓어졌으나 장례식 제단에서 꽃의 사용은 일본 전통 꽃꽂이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국화는 시설재배와 전조재배가 늘어나면서 구입 시기가 폭넓어져서 다른 꽃에 비해 장례식의 꽃으로 선택 폭이 넓어졌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장례식 제단에 국화가 사용된다는 이야기가 꽃의 판매 마케팅에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국화가 생화제단에 처음으로 많이 사용된 것은 1967년 10월 31일에 거행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 일본 전 총리 장례식이다. 이 장례식 제단은 일본의 대표적인 꽃 유통과 장식 업체인 히비야화단(日比谷花壇)에서 맡아서 했고, 장례식은 일본 각지에 TV로 중계되었다. 히비야화단에서 국화를 장례식 제단의 메인 꽃으로 선택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꽃장식 전문가들은 국화가 다른 어떤 꽃보다 장례식 제단에 장식하기 좋은 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꽃의 저장 유통시설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 국화꽃의 긴 수명은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에게 취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때문에 재배농가가 많아 꽃을 구입하기가 쉽고, 수명이 길어 꽃집에서는 재고 우려가 적으며, 장례식 같은 행사에서는 장식을 해도 수명이 길어서 관 상가치가 높아 채택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곧게 뻗는 줄기와 일정한 모양의 꽃은 장식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국화로 장식한 제단이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고, 이것이 국화가 장례식의 꽃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장례식에 많이 사용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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