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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농촌 제사와 나눔 문화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4-05-10 09:45:39
  • 수정 2024-05-10 09: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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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농촌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통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교체되면서 전통문화는 잊혀지거나 추억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라지는 전통문화 중에는 그 가치를 되새겨 볼 때 안타까운 것들이 많다.

 

제사(祭祀) 문화도 그중의 하나이다. 요즘은 제사 대상이 많이 줄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도 초저녁으로 앞당겨서 실시하는 가정들이 많다. 과거에는 제사 대상 폭이 넓었다. 게다가 전남에서는 조상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많았다.

 

특히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6.25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죽은 이 가운데는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도 제사가 많았는데, 이들 제사는 많은 종가가 아닌 곳에서 주로 지냈다.

 

종가에서도 이름 없는 제사를 지내기는 했는데, 이것은 보통 조상 제사와 함께 지냈다. 종가에서 이름없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는 방법은 조상의 제사상 옆에 작은 상을 마련하고, 그 위에 제물을 장만하였다. 이때 제사 명목은 조상만 와서 제례식을 먹으면 외로우므로 친구와 같이 와서 함께 먹으라는 의미도 있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이름 없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는 가정에서는 몇 달 전부터 그 제사에 사용할 음식재를 준비했다. 한겨울이 제사라면 감을 수확한 후 항아리에 넣고 시원한 곳에 저장하거나 곶감을 만들어 준비했다. 나물이 나오는 시기에는 채취하여 데쳐서 건조 보관하였고, 생선도 조금씩 사모아 건조해 두었다가 제사 때 사용하였다.

 

제사는 이렇게 이름없는 사람까지도 챙기는 의식이었고, 제사를 지낸 후에는 이 음식들을 나눠 먹었다. 농촌에서는 1970년대, 어떤 지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웃에 놀러 다니던 마실 문화가 있었다. 1970년대는 시골 외딴 마을에 TV를 소유한 집은 몇 군데 없었으므로 TV가 있는 집은 극장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밤늦도록 TV를 시청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밤마실로 모여 있거나 TV를 시청하고 있는 집에는 마을에서 제사를 지낸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음식을 배달해 주었다. 그러면 떡과 전을 나눠 먹거나 나물과 밥을 비벼서 먹곤 했다. 그 시기에는 마을 어른 들은 남의 제사는 물론 헛제사 날짜까지 꿰고 있었다.

 

조상 제사가 없는 가정에서도 헛제사를 지냄으로써 늦은 밤에 마을 사람들에게 야식을 제공했다. 그러므로 헛제사는 이름없는 사람을 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의 기능을 했다. 과거의 농촌문화는 밤마실, 모여서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TV 시청을 했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헛제사를 통해 이름 없는 사람을 애도하고, 제사를 지낸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과거의 농촌문화는 제사의 추억처럼 공동체 의식을 갖고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것은 농촌 가치의 기본이 되었다. 그런데 과거의 문화를 밀어내고 새롭게 등장한 현대의 농촌문화는 점점 경쟁적이고, 나눔보다는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이 적지 않다.

 

그 결과 빈집이 늘어나 휑해진 농촌의 마을처럼 이웃과 마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제삿밥을 나누던 시절처럼 함께 힘을 합치고, 좋은 일과 슬픈 일을 함께 나누던 농촌문화의 복원으로 정이 많고 따뜻한 농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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