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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 시인․수필가 김병연
  • 기사등록 2024-02-28 1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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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산에서 골짜기로,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흘러가는 도중에 장애물(障礙物)을 만나면 파괴하기보다는 넘어가고 넘을 수 없으면 부드럽게 돌아가 종래에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많이 모인다.

  

물은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낮은 데도 있고 깊은 데도 있고 온갖 것들이 그 아래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나 수면은 언제나 수평을 이룬다.

  

물이 한꺼번에 많아져 급류를 이루면 수면이 높고 거칠어지는 것이 마치 인간 속의 뭔가가 넘쳐 화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높이 보여 자신만 낮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물이 너무 많아 흘러넘쳐 주위를 휩쓸어 버리는 것은 좁은 마음에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는 해코지를 하려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언제든 낮은 데로 흘러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속성처럼 우리네 마음도 물을 닮으려고 애써 노력하면 겸손과 평정의 유지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닿지 않는 곳,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어디든지 간다. 때로는 살랑거리는 미풍(微風)으로, 때로는 휘몰아치는 폭풍(暴風)으로 간다.

  

봄날의 미풍은 마치 기분이 좋을 때 얼굴에 저절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과 같고, 일한 후의 땀을 식혀 주는 여름철의 시원한 바람은 호탕한 웃음 같고 속 좁은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는 어른의 고언(苦言) 같기도 하고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팔등신 미녀 같기도 하다.

  

겨울바람은 마치 냉소나 비웃음 같다. 삭풍이 나뭇잎을 떨구거나 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냉소나 비웃음은 우리네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고 따뜻하던 마음을 차갑게 식히기도 한다. 하지만 삭풍도 언젠가는 잦아들듯이 냉소(冷笑)나 비웃음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생각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나와 이웃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바다는 육대주(六大洲)에서 밤낮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모두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는다. 사람도 마음을 바다처럼 넓게 가지면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물처럼, 바람처럼, 바다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은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거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강 건너 어느 집이 불타고 집주인과 그 식솔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봐라,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불나면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는 집이 없으니 불날 일도 없고 불이 나도 탈 것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그러니 너는 아버지를 잘 둔 것이다.”

  

요즘 신문을 보면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 거지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자위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단어들과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신문을 장식한다. 경제에는 문맹(文盲)이라 증권투자 등 돈을 굴릴 줄 모르는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안목(眼目)이 없을 뿐 아니라 시도해볼 경제적 여력도 없어서 아예 그냥 가난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소극적인 행태의 삶이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지고 작금(昨今)의 시대상에 맞지 않는 삶으로 좀 빈곤하더라도,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모두 돈을 보고 삶을 사는 것 같다. 돈이면 제일이고 돈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

  

수천만 원 또는 수억 원의 뇌물을 받고도 모르쇠와 오리발로 일관하다 증거가 나오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공직자가 많은 세상, 고위공직자 부인은 족집게 투자가라는 세상, 지위가 높은 것이 부끄러운 세상, 스폰서 검사와 그랜저 검사에 이어 벤츠 여검사까지 등장한 세상, 전관예우로 축재를 하는 세상, 지위가 높으면 큰 도둑이고 지위가 낮으면 작은 도둑이라는 세상, 권한과 권력은 축재의 수단이 됐다는 세상, 뇌물은 받은 사람만 처벌해야 나라가 깨끗해질 테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상, 세상은 법과 원칙이 움직여야 되지만 로비(학연․지연․혈연 등의 빽, 금품, 향응, 아부, 선물, 줄서기 등)가 움직인다는 세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scandal)이라는 말은 이미 고전이고 안 들키면 사랑이고 들키면 불륜(不倫)인 세상, 먹는 사람 나쁘다고 하지 말고 먹지 못하도록 제도(制度)를 고쳐야 할 세상이다.

 

서민이 보기에는 지금 가진 것도 분에 넘쳐나고 호화생활을 하는데 더 못 쌓아 안달이다.

  

돈을 모으는 과정(過程)에는 상관없이 누가 빨리, 더 많이 부(富)를 축적하여 편하고 안락하게 인생을 사느냐에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오직 나만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모두가 썩어가고 있는 것은 가치관(價値觀)이 없는 삶의 결과이다.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을 소신(所信) 있게 살아야 한다.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가리지 않고 쉽게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총수나 인기 절정에 오른 연예인들의 자살은 가치관(價値觀)의 부재(不在) 때문이다.

  

목표(目標)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단(手段)과 방법(方法)을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가치관의 문제이다. 가치관 없이 어떠한 것을 추구한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정치의 실세에 기대거나 권력을 좀 쥐었다 하는 사람들, 성공과 부(富)를 이룬 사람들이 청문회(聽聞會)나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 것은 그들의 삶이 가치관(價値觀)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 특별한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을 보면, 마냥 세파에 떠밀려 살아온 것이 아니고 치열하게 자신(自身)과 환경(環境)에 항거(抗拒)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산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는 난 사람과 든 사람은 많지만, 된 사람이 너무나 적지 않나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돈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와 성인군자 밖에 없다. 필자도 돈을 중요시하며 산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모은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과정이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정당해야 된다.

  

소신(所信)이 있는 사람은 상황의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쓴소리를 반기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놓고 멀리 보고 살핌으로서 사안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알고 생각이 정리되면 다소의 무리가 따른다고 할지라도 의연히 대처해 나간다. 그것이 자신의 말로가 좋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세상이 많이 혼탁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만용을 부리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나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고, 지식도 있다 하나 양심에 따라 지식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인에게는 소신인 것이 간혹은 타인에게 아집이나 융통성 없는 것으로 곡해돼서 인간관계(人間關係)나 거래에 악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대리만족은 하면서도 그저 위인전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사람들의 특별한 삶으로 제쳐 두었다. 아쉽게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 자신이 아무리 잘나도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적당히 눈치 보고 염치를 찾고 보조를 맞추며 사는 것이다. 막말로 치고 빠지는 것을 잘해야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분명히 잘못되고 아닌 일인 줄 알지만 윗사람이나 대다수의 의견이기 때문에 소신을 말하지 못한 경우가 우리는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권위주의나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소신 있는 사람은 자칫하면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고 만다. 소신이랍시고 나의 의견을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고 애꿎게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결국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잘 참는 사람이 무던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외형상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의 선배들은 말한다.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쥐고 흔들 뿐 원래 공정하지 않다고, 앞장서서 큰 소리를 내고 자기주장을 하면 오히려 희생당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시대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가만있다가 위로 올라가서 힘을 가진 다음에 자기주장이나 소신을 펼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인가. 자문(自問)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權力)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은 침묵(沈默)이라고 한다.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저 참고 입 다물면 적어도 배척당하거나 밥줄이 끊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견제(牽制)받지 않는 권력은 더욱 견고해지고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침묵하고 방관(傍觀)한 사람이니 세상 살아가는 일은 쉽지가 않다. 산다는 것은 때로는 현명하게 비굴해지며 문득 짠해지는 내 자신을 다독이는 아픔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격(格)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뜻하는 단어이다. 쉽게 설명하면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격에 맞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다. 그럼에도 격에 맞게 사는 사람보다 격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이 더욱 많은 세상이다.

  

속은 텅텅 비고 겉만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내실을 다지기보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고, 격에 맞게 행동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 이상의 스트레스(stress)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자살(自殺)을 하기도 한다.

  

격에 맞게 살면 짧은 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격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보다 오랜 기간 동안 편안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격에 맞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重要)하다. 각자 자신이 격에 맞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삶은 분수나 본분을 알면 걱정이 없다. 격(格)에 맞게 사는 것은 분수나 본분을 안다는 것이다. 수분무환(守分無患)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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