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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가 달게 되는 원리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4-02-13 08: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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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설 명절에 찾은 시골에는 아직도 장작불을 지피는 곳들이 많았다. 주택밖에서 솥을 걸어두고 허드렛물을 끓이거나 나물을 데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아궁이의 장작불은 옛 추억을 소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과거에 아궁이의 불은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는 전용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고구마는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보다 불을 지피고 나서 따뜻한 재 속에 묻어 두었을 때 훨씬 맛있었다. 군고마는 이처럼 같은 고구마라도 어떤 불에 굽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달라졌다.

 

군고구마가 가열되는 열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고구마의 주성분인 전분과 고구마에 포함된 ‘아밀라아제’라는 효소와 관련이 있다. 전분은 포도당이라는 작은 알갱이가 사슬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아밀라아제에는 이것을 잘게 자르고, 포도당이 2개 연결된 ‘맥아당’이나 3개 이상 연결된 ‘올리고당’이라는 당을 만들어내는 작용이 있다.

 

맥아당은 설탕의 1/3 정도의 단맛이 있으므로 아밀라아제가 잘 작용하게 하는 것에 의해 꿀이 스며든 것처럼 달콤한 고구마로 만들 수가 있다. 아밀라아제를 활용하여 고구마를 달게 하는 데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전분이 ‘호화'한 상태에서 아밀라아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밀라아제가 깨지지 않고 작동하는 온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전분은 물과 가열하면 부드러운 접착제가 된다. 이것을 호화라고 한다. 가열하지 않은 전분은 사슬끼리 꽉 막혀있어 효소가 들어갈 수 없으나 가열하게 되면 사슬과 사슬 사이에 틈이 생겨 물이 들어가 아밀라아제가 작동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고구마의 전분이 호화를 시작하는 온도는 65-75℃이며, 아밀라아제는 80℃를 넘으면 불활성화되어 작용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65-80℃의 온도대가 가능한 한 길어지도록 가열하면, 아밀라아제가 최대한으로 작용해, 단맛이 강해진다. 그러므로 고구마를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에 굽는 것 보다 열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의 숯불이나 나뭇재 속에 묻어 두고 구운 것이 맛있게 된다.

 

고구마를 굽거나 삶을 때 달게 되는 이러한 원리를 활용하려면 우선 삶을 때 65-80℃를 길게 유지하는 가열 방법이 좋다. 처음부터 고온에서 짧은 시간 동안 삶은 것 보다 저온 오븐에서 1-2시간에 걸쳐 구워도 상당히 달콤하게 된다.

 

고구마를 빨리 굽거나 삶기 위해 잘라서 이용하는 것 보다는 통째로 가열하는 것도 달게 하는 포인트이다. 고구마를 자르지 않고, 큰 덩어리채로 가열하면 안쪽까지 천천히 열이 전해지므로 그만큼 아밀라아제가 잘 작용한다. 고구마를 작게 자르거나 전자레인지로 가열하게 되면 달게 되는 온도대를 곧바로 지나게 되어 당도가 높지 않게 된다.

 

한편, 아밀라아제는 전분을 분해하여 당으로 바꾸는 효소의 총칭이다. 고구마에 있는 β-아밀라아제와는 별도로 α-아밀라아제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β-아밀라아제는 주로 식물과 미생물에서 발견되는 효소이지만, α-아밀라아제는 동물에도 존재하며 우리의 타액에도 포함되어 있다.

 

밥을 입에 넣고 잘 씹으면 단맛을 점점 느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쌀의 전분이 타액 중의 α-아밀라아제에 의해 분해되어 맥아당이나 올리고당이 되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음식을 씹으면서 타액과 섞어서 음식에 포함된 전분을 분해하고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요즘은 전자레인지처럼 음식을 편리하게 가열하고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기기가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장작불과 열기가 남아 있는 재 속에 파묻어 두고 구웠던 군고구마의 맛을 비교하고 경험을 통해서 알아낸 전통 지식이 쓸모없게 되고 있으나 그 원리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농업에 관한 조상들의 경험적 전통 지식이 과학에 의해 그 원리가 구명되고, 그 원리가 시대에 맞게 그리고 첨단 기기 등과 연계되어 활용되어 농업발전과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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