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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고구마 소주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3-05-11 08: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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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해남은 우리나라 고구마 최대산지이다. 일본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은 우리나라 해남처럼 일본에서 고구마 명산지로 유명하다. 고구마 명산지인 가고시마현에서 유명한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구마 소주이다.

 

가고시마현에서 고구마 소주가 만들어지기 전인 16세기 초에는 쌀, 기장 등의 곡류를 원료로 한 증류주가 제조 및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쿠라지마(桜島)의 화산재 퇴적층인 농지는 벼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토지여서 쌀 부족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가고시마(鹿児島)의 옛 지명인 사쓰마(薩摩)의 번주(藩主)인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는 고구마 소주의 발안(発案)을 했다. 그 배경에는 알코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쓰마(薩摩)에서는 서양의 무장(武装)에 대응하기 위해 비 오는 날에도 발포가 가능한 뇌홍(雷汞)이라는 포탄이나 군함을 만들기 위해 기계공업의 조업을 해야 했는데, 그것에는 알코올이 필요했다.

 

알코올은 당시 쌀로 만들었는데, 쌀 부족에 시달렸던 사쓰마에서 쌀은 매우 귀중한 음식이었고 무기 제조에 사용하게 되면 보다 심각한 쌀 부족을 초래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는 저렴하고 구입이 쉬운 고구마를 사용해 알코올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현재 가고시마에서 번성한 소주의 기원이 되었다.

 

가고시마의 소주는 한때 사쓰마로 불리던 가고시마의 지명에서 유래된 ‘사쓰마 소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증류주로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가고시마현에서 재배된 명산 고구마와 물, 누룩을 이용하여 원료의 발효, 증류, 저장, 병입까지 가고시마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사쓰마 소주로 불린다.

 

사쓰마 소주는 2005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의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았다. 이는 와인 보르도, 샴페인, 스카치, 버번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원산지를 식별하는 표시로 지적재산권이 보호받고 있다. 현재 가고시마현 내에서 고구마 소주를 생산하는 업체는 100개 정도 된다.

 

사쓰마 소주는 가고시마의 특산 요리인 생선의 국물을 기름으로 튀긴 향토 요리의 '사츠마게(さつまあげ)', 흑돼지와 샛줄멸(きびなご) 회 등과 함께 먹을 때 일품이며, 이것들은 가고시마현의 여행객들에게 큰 매력이 되고 있다.

 

가고시마의 사쓰마 소주를 말하는 데 중요하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재료가 되는 고구마이다. 현재 가고시마에서 제조되는 고구마 소주의 대부분은 1975년에 가고시마에서 소주용으로 품종을 만든 ‘코가네센간(コガネセンガン)’이다. 코가네센간은 알코올 발효의 근원이 되는 전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밤과 같은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최근 사쓰마 소주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구마 기부병으로 인해 가고시마현 내의 고구마 수확량은 7만 톤 가까이 감소해 소주 메이커는 고구마 원료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일본 농업연구기관과 지자체에서는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고구마 기부병에 대해 저항성이 강한 신품종 ‘미치시즈쿠(みちしずく)’를 육성했다. 미치시즈쿠는 코가네센간보다 수확량이 많고 소주로 만들었을 때 술의 질도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고구마 소주의 유명 브랜드인 ‘기리시마 주조(霧島酒造株式会社)’는 소주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원료인 고구마에 주목해, 2016년부터 자사 내에서 독자적으로 고구마 육종을 개시했다. 그리고 자사에서 육종한 고구마를 이용해서 만든 소주가 ‘기리시마 8(KIRISHIMA No.8)’이며, 올 초에 출시했다.

 

가고시마 고구마 소주의 사례를 보면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를 원료로 하여 지역 특산 요리와 함께 지역의 매력을 높이고,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또 고구마의 품종과 용도 및 콘텐츠 다양화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관광산업을 키우면서 고구마의 안정적인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국내 최대 고구마 산지인 해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남은 1993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진양주(眞釀酒)가 있다. 막걸리 계의 에르메스로 유명한 해창막걸리의 산지이다. 해남 옥천의 고구마 막걸리 등 많은 술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자산을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처럼 고구마 가공품을 통해 지역 특산 요리, 홍보, 관광 등과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성공해서라 아니라 고구마 특산지로서 안정적인 생산과 품종의 다양화, 고구마 산업과 수입의 다변화, 활용의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사쓰마 소주의 사례 분석과 적용 방안을 모색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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