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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신문으로 보는 1950-1960년대 나주부채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7-08 08: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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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나주가 부채의 명산지임은 1950-1960년대 발행된 신문에도 나타나 있다. 동아일보의 1956년 12월 23일자 지면의 ‘‘한국의 세시풍속 연중행사기(23)’라는 기사에는 “단오 부채에 대해서 부채 종류와 산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대표 명산지로 전주, 남평과 나주에서 만든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쳐준다”는 내용이다.

 

경향신문 1957년 6월 2일자 지면에는 ‘‘단오의 민속(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 내용은 단오의 우리말 이름, 단오부채 그리고 그네 및 씨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단오부채에 대해서는 “이조말기까지는 해마다 端午(단오)날에 工曹(공조)에서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이것을 재상(宰相)과 시종(侍從)하는 신하와 액정소속(掖庭所屬)에까지 나눠 주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단오 부채이다....중략... 그중에서도 전주, 남평과 나주에서 만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쳐 주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즉 남평과 나주 부채는 전주 부채와 함께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경향신문 1963년 6월 22일자 지면에는 ‘‘운치 그윽한 옛 부채들’이라는 소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 내용 중에 “예부터 한국의 부채 각 명산지로는 전주, 남평, 나주 등이 유명하다”는 대목이 있다. 부채의 명산지로 나주와 나주의 남평 그리고 전주를 지목해 놓은 기사이다.

 

조선일보 1963년 8월 11일자 신문 '부채'에서는 예부터 명채 명산지는 전주, 남평, 나주등지라고 소개하였다. 이 신문에서는 "선조 때의 명문장가 임제가 연소(年小)의 애기(愛妓)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시를 선면(扇面, 부채)에다 써서 주며 슬퍼한 것이라든가" 등 부채에 얽힌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다.

 

매일경제신문 1967년 7월 7일자 지면에는 “여성살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 내용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부채로서 가장 질이 좋은 것은 전주, 남평, 나주의 것으로 종류는 태극선, 승두선, 어두선 등 여러 가지가 있어 그 만드는 법이 다르다”는 내용이 있다. 즉, 나주부채와 나주의 남평부채 그리고 전주부채를 가장 질이 좋은 것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소제목에서는 ‘우리나라선 나주산(羅州産)’이라고 나주를 강조하고 있다(그림).

 

나주는 위의 신문에서와 같이 1950년대와 1960년대도 여전히 부채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회자되었다. 그러나 1969년에 발간된 '한국민속종합보고서'에는 “근래의 일반 미선처럼 염가다량(廉價多量) 생산이 안 되는 세공업이므로 아주 쇠퇴했다. 나주 인근에서 부채공방(선방(扇房)은 단 한 집이 명맥(命脈)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도 연간 1천 개도 소비 못 하는 실정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명성 높았던 나주부채는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명성만 전해졌고, 실제 전업으로 만드는 곳은 1군데만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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