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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를 부끄럽게 만든 할머니와 나주 절굿대떡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0-06-04 08: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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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중 사람은 조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제떡, 산중 사람은 번추떡, 들녘 사람은 쑥떡, 충청도 사람은 인절미떡, 일본 사람은 모찌떡, 전라도 사람은 몽딩이떡, 강원도 사람은 강냉이떡, 경상도 사람은 송편떡, 평안도 사람은 수시떡…….”

 

이 노래 가사는 전남 장흥 지방에서 불리었던 떡 타령의 일부다. 노래에는 지역별 대표 떡이 나오는데, 떡 이름 중에 “산중 사람은 번추떡”이라는 낮선 이름이 있다.

번추떡은 장흥의 턱 타령에만 있고 떡 관련 고문헌이나 자료에는 없다. 농업지도사, 농학 관련 연구자, 식품 관계자 중에도 번추떡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도 번추떡을 알게 된 것은 2015년 2월 1일 나주 남평장이다. 나주제비쑥(떡쑥) 조사차 찾은 남평장에서 한 어르신이 떡은 뭐니 뭐니 해도 제비쑥떡과 분추떡이 최고라는 것이었다. 그 때는 그냥 흘러들었다. 그리고 봄이 되어 나주 영산포장에서 분추라는 것을 보았다.

 

영산포 시장의 나물 파는 곳에서 할머니 한 분이 떡쑥과 낮선 건조 식물을 판매하고 계셨다. 그 식물의 이름을 여쭤보았더니 분추, 번추로 불린다라는 것이었다. 남평장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구입처를 여쭤보았더니 집에서 가꾼다고 하셨다. 생체 식물이 궁금해 그날 시장에 갖고 나온 것을 모두 사기로 하고, 할머니를 댁으로 모시고 갔다.

 

할머니 댁의 텃밭에는 절굿대(Echinops setifer)가 자라고 있었다. 그 순간 분추가 절굿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절굿대를 찾는 사람이 많은데, 숲이 차 채취가 어렵게 되자 산에 있는 절굿대에서 씨앗을 채취한 후 텃밭에서 싹을 틔우고 재배 해 왔던 것이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국내외 학술지에 식물 관련 논문을 300편 넘게 게재할 정도로 열심히 연구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전통 자원식물에 무지하고, 할머니의 지혜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들과 농업기술관련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할머니가 하고 있는 현실도 부끄러웠다.

 

이후 창피한 마음에 절굿대떡을 본격적으로 조사했다. 절굿대는 과거 나주뿐만 아니라 남도의 여러 지역에서 분추, 번추, 분대, 가새분추, 숫분추(암분추는 수리취를 지칭) 등으로 불리었으며, 절굿대떡은 가장 고급떡으로 폭넓게 이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절굿대는 떡 자원으로서 중요하고 비중있는 자원식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그 과정에서 절굿대떡을 복원하고 보급하겠다는 분들이 나주에서 나타났다. 그 분들은 나주에서 처음으로 절굿대를 대량 재배하면서 절굿대떡집도 창업했다. 절굿대떡은 화제가 되어 언론에도 소개되었고, 중앙의 TV방송에도 나왔다. 얼마 전에는 나주 원도심에다 떡카페를 개업했다. 절굿대의 재배(1차 산업), 떡 제조(2차 산업), 떡 카페(3차 산업), 이른바 6차 산업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과정에는 나주시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그 많은 농업 연구자나 관련 기관에서 전통 식재료인 절굿대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가 절굿대를 재배해 왔던 상황과 달라진 것이 없다. 농업관련 기관에서는 여전히 번식법, 재배기술 개발 등에 대해 무심하다. 전통 떡을 되살리고, 보급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만 바동거리고 있다. 당장에 필요한 수요는 외면한 채 거창한 구호만 난무하는 농업 연구와 지도 현실이 낯부끄럽고,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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