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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칼날 조명하 의사 2008-05-13
김승룡 ksy0767@hanmail.net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자칫 내부 분열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어떤 나라와의 관계보다는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 중심으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고 내부 분열이 아닌, 대한민국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순국선열들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나라사랑 정신을 다잡음으로써 국민이 하나가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80년 전 오늘, 1928년 5월 14일 9시 55분경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만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조명하 의사의 의거다. 조명하 의사는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원흉이었던 일본왕 히로히토의 장인인 구니노미야의 목을 향해 한민족의 염원을 담은 애국의 칼날을 날렸다.

조명하 의사는 황해도 송화에서 1905년에 태어나 풍천보통학교와 송화보통학교를 거쳐 1926년 군청서기 임용시험에 합격해 신천군청에 근무하게 되었다. 군청 직원으로 일본제국주의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편안히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6․10만세운동, 송학선의 금호문의거,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의거 등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서 적당한 기회가 오지 않자 상해임시정부로 출발하여 1927년 11월 타이완에 도착한다. 검술을 연마하며 때를 기다리던 조명하 의사는 1928년 5월 타이완에 주둔 중인 일본군의 검열을 위해 일본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육군대장이 육군특별검열사로 온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그를 처단하기로 다짐한다.

1928년 5월 14일 아침 9시 55분경 조명하 의사는 구니노미야를 태운 차에 바람처럼 뛰어올라 한민족의 염원을 품에 안고 일본제국주의 원흉의 목에 칼날을 날린다. 비록 그 자리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구니노미야는 온 몸에 독이 퍼져 6개월을 앓다가 사망하기에 이른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잡힌 의사는 같은 해 7월 18일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군청 서기로, 일본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조명하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더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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