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독한 것 같으니라구.”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고 하시던 말은 봄날 신새벽 얼음기둥을 안고 있는 원추리를 보면 생각나곤 한다. 아버지의 독백은 삶을 버티는 힘, 혹은 자연과 닮은 생존의 언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독기’를 음식 속에서 발견하며 살아왔다.
흑초를 연구하고 치유 식탁을 차리는 푸드닥터로서, 그 독함은 늘 해독과 균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봄 들판에서 만나는 원추리는 그런 존재다. 햇살이 닿고 물기 어린 논두렁 가까이, 그러나 물에 잠기지 않는 경계에서 자라는 이 식물은 스스로 수분을 품고 겨울의 잔기를 견뎌낸다. 얼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생태, 그 자체가 이미 강인함의 증거다.
그래서일까. 원추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문득 “독한 것 같으니라구.”라는 아버지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실제로 원추리는 ‘독’을 품고 있다. 날것으로 먹으면 복통과 설사를 유발할 만큼 강한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늘 그렇듯, 독과 약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나물은 반드시 데치고, 때로는 감초를 더해 독성을 중화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 놀랍게도 숨겨져 있던 달큼함과 부드러움이 살아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식은 단순한 섭취를 넘어 치유로 확장된다.
중국에서는 원추리를 ‘망우초(忘憂草)’라 부른다.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라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원추리에는 비타민 C와 다양한 미네랄이 풍부해 계절 변화로 인한 피로와 우울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겨울의 끝자락, 이유 없이 가라앉는 감정에 자연이 건네는 처방전이다.
나는 이 원추리를 식초와 함께 다룬다. 데친 원추리에 식초를 더하면 해독 작용이 배가되고, 특유의 달큰함이 더욱 또렷해진다. 발효식초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식재료의 성질을 정리하고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매개체다. 그래서 원추리와 식초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새콤함은 기운을 깨우고, 달큼함은 마음을 풀어낸다.
원추리는 장아찌로 담가서 사계절 즐길 수도 있다. 영양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 잎은 도톰하고 식감이 살아 있어, 오래 두고 먹을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씹을수록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은 어느새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것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봄철에 자연이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다.
고문헌 『산림경제』에서도 원추리 꽃을 살짝 데쳐서 식초 몇방울 떨어뜨려 나물로 먹으면 송이보다 담백한 맛을 지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화려함보다 깊이를 중시한 옛사람들의 미각이 반영된 대목이다. 우리는 종종 강한 자극을 찾지만,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오히려 이런 담박한 음식이다.
원추리는 분명 다루기 까다로운 나물이다. 그러나 그 독함을 이해하고 제대로 다루면, 그 어떤 봄나물보다 깊은 위로를 건넨다. 독함 속에 숨은 달콤함,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 아닐까. 봄날의 식탁 위에 원추리 한 접시를 올려보자. 나른한 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난다. 겨울을 견딘 생명력과 마음을 다독이는 따뜻한 치유가 함께 담겨 있다.
참고 문헌
곽경자. 2026. 잔인한 4월, 시금치에 응축된 시간과 영양의 인문학.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4-15).
곽경자. 2026. 막걸리식초와 갑오징어, 몸을 깨우는 봄의 맛.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4-1).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