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연말이 되면 전남 지역 곳곳의 농업기술센터와 농업 관련 기관에서 수상 소식이 잇따른다. 한 해 동안의 노력과 성과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담당자들의 노고 또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가끔은 이런 질문이 남는다. 현장의 체감과 달리, 왜 이 사업이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성과로 포장된 결과와 실제 농업 현장 사이의 거리감은 농업 행정의 연말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연말은 농업기관에게 ‘성과 정리의 계절’이다. 각종 보고서가 쌓이고, 실적표와 평가지표가 바쁘게 오간다. 한 해 동안 무엇을 했고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수치와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은 행정조직으로서 피할 수 없는 절차다. 겉으로 보면 연말 평가는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평가가 늘 같은 얼굴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농업기관의 연말 평가는 대부분 정량 지표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사업 건수, 참여 인원, 교육 횟수, 예산 집행률, 언론 보도 실적 등이 주요 항목이다. 이런 지표는 비교와 관리가 쉽고, 상급기관 보고나 감사 대응에도 유리하다. 문제는 농업과 농촌의 변화가 반드시 숫자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농민의 인식 변화, 현장에 쌓인 신뢰, 지역 공동체의 미세한 회복은 단기간에 수치로 환산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평가표에서 좀처럼 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 결과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농업기관 현장에서는 묘한 풍경이 반복된다. 본래의 정책 목적보다는 ‘평가 항목에 맞는 것 위주의 활동’이 우선되는 경우가 생긴다. 교육을 한 번 더 열고, 행사를 하나 더 만들고, 감사에 지적되거나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는 분위기도 형성된다. 참여 인원을 늘리고, 사진과 자료로 남기기 쉬운 사업이 선호된다. 사업의 질보다는 횟수가, 내용의 깊이보다는 외형이 강조된다. 현장은 분주해지지만, 정작 농민과 지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뒤로 밀리기 쉽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업무도 생긴다. 현장 민원 대응, 개별 농가의 장기 상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시범 사업,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기초 기술 지도와 같은 일들은 농업 현장에는 꼭 필요하지만, 평가지표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전남 국제농업박람회 역시 비슷한 구조에 놓여 있다. 전남 농업의 이미지를 알리고, 농업의 미래 비전과 기술 흐름을 제시하며, 농업인·기업·연구기관을 연결하는 과정에는 수치로 잡히지 않는 성과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평가는 입장객 수나 단기 경제효과 같은 외형적 지표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소 여건상 국제농업박람회를 운영하는 (재)전남도국제농업박람회에서 추가 확보가 쉽지 않은 주차장 문제 등이 부정 평가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박람회를 준비하며 쌓인 네트워크, 농업 브랜드 인지도 상승, 현장 담당자들의 기획 역량 축적 같은 성과는 평가표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업무를 맡은 담당자들이나 기관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또 하나의 한계는 연말 평가가 ‘과정’보다는 ‘결과 보고’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농업 정책과 사업은 기후 변화, 시장 상황, 인구 구조, 농가 여건 등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평가 체계는 실패와 수정, 방향 전환을 학습의 과정으로 인정하기보다 감점 요인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무난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농업기관 내부에서도 연말 평가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담당자들은 ‘이 일이 농업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보다 ‘평가표에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성실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다. 평가가 조직의 학습과 개선을 돕기보다 방어 논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행정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보수적으로 변한다.
그렇다고 연말 평가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전남 농업기관의 평가는 이제 단기 실적 중심에서 벗어나 중장기 변화와 현장 반응, 유발효과 등을 함께 읽어내는 총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숫자와 함께 이야기와 맥락이 기록되고,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시행착오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자산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해의 정책과 사업이 같은 지점에서 맴돌지 않는다.
농업은 본질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산업이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며, 실패를 거쳐 다시 방향을 잡는다. 농업기관의 평가 또한 이런 농업의 시간 감각을 닮아야 한다. 연말 평가가 단순한 성적표가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성찰의 기록이 될 때, 비로소 평가의 의미는 살아난다. 성적표의 빛과 현장의 그림자 사이를 함께 바라보는 평가 체계, 그것이 지금 전남 농업에 필요한 변화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농업인구 감소 시대, 농업기술센터의 광역화와 연대 고려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12-09).
허북구. 2025. 1400회 농업 칼럼에 담긴 전남 농업.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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