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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 한국형 CSA의 마중물이 되길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06-11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미래세대의 건강 증진과 출산·양육 친화 분위기 조성을 목표로, 도내에 거주하며 2024년 1월 1일 이후 출산한 산모, 임산부, 난임부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이용하지 않는 영유아 양육 가정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대상자에게는 1인당 연 48만 원 상당의 꾸러미가 공급되며, 이 중 9만6천 원은 자부담이다.

 

이번 전남도의 사업은 단순한 복지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매주 또는 격주로 친환경농산물을 정기 배송하는 점에서, ‘구독형 농산물 서비스’로 주목받는 공동체(지역사회) 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모델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CSA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지역 기반 농업 모델로,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선불로 투자하고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공급받는다. 특히 지역 소농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유기농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CSA 형태가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팜프레시 투 유(Farm Fresh To You)’는 고객이 직접 박스 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유기농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며, 소비자는 온라인 플랫폼 ‘로컬하비스트(LocalHarvest)’를 통해 전국의 CSA 농장을 검색하고 구독할 수 있다. 디지털 기반의 유통 관리와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는 제휴농업(提携農業, Teikei)이 유기농업운동과 결합되어 성장했다. 197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 모델은 생산자는 농약을 쓰지 않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정기구매와 농장 방문, 농작업 참여를 통해 생산자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한다. 일본 유기농협회(JOAA)는 이러한 생산자-소비자 연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의 AMAP(Association pour le Maintien d'une Agriculture Paysanne) 역시 도시 소비자와 농민 간의 계약을 통해 지역 중심의 식량 자립을 도모한다. 주로 매주 지정 장소에서 직접 수령하며, 가격 결정권은 생산자에게 있다. GMO와 농약 사용을 배제하고 계절 농산물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이 모델은 소비자와 농민 간 신뢰에 기반한 거래 방식이 핵심이다.

 

독일의 연대농업(Solidarische Landwirtschaft)은 농민과 소비자가 비용, 수확, 위험을 공유하는 공동체 기반 농업이다. 연회비를 납부한 회원은 일정량의 농산물을 제공받고, 전국적인 정보 공유 플랫폼인 ‘졸라비 네트츠베르크(Solawi Netzwerk)’를 통해 경험과 자료를 공유한다. 이들은 단순한 식재료 유통을 넘어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 CSA를 실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CSA의 구조와 철학이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대부분 지자체가 운영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공공형 구독 모델로 복지형 꾸러미를 제공하는 수준이며, 민간 주도의 지속 가능한 CSA는 크게 활성화가 되지 못한 상태이다. 특히 온라인 기반 구독 관리 플랫폼, 맞춤형 배송 시스템, 소비자 참여형 농업 등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전남도의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은 단지 출산 장려 정책이나 먹거리 복지 차원을 넘어, 한국형 CSA로 진화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문제점을 찾고 농가차원에서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Farmigo’와 같은 디지털 구독·배송 관리 시스템에 의해, 생산자는 농산물 구성과 수량을 예측할 수 있고, 소비자는 앱을 통해 원하는 품목과 수령 주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는 농민에게는 안정된 판로를, 소비자에게는 질 높은 먹거리 선택권을 보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결국, 이번 전남도의 꾸러미 사업이 단발성 정책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복지형 꾸러미’에서 출발하되, 단계적으로 지역 농산물 소비 확대, 로컬푸드 순환 시스템 구축, 디지털 농업 유통 생태계 조성으로 확장돼야 한다. 나아가 ‘한국형 CSA’의 모델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때, 비로소 이 사업은 전남산의 친환경농산물 소비처 확대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농업과 미래세대의 삶을 잇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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