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가 쌀의 적정 생산을 위해 논에 벼 대신 콩과 옥수수 등 타 작물 생산 기반을 확충하고자 ‘2026년 전략작물 산업화 지원사업’ 대상자를 6월 13일까지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논콩, 옥수수 등 전략작물의 생산과 유통 여건 개선을 위해 교육·컨설팅, 기계·장비, 저장·선별시설 구축 등 다각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벼를 재배하지 않거나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지원이 주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정책은 고령의 농업인에게는 격세지감을 안겨줄 만하다. 과거 농업은 ‘쌀 중심’이었고, 논이 부족하면 밭에까지 벼를 심어가며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수확하고자 했던 것이 한국 농업의 오랜 전통이었다. 이러한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내려온 농경문화의 전환은 많은 이들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쌀 소비 감소, 생산량 과잉, 인구 감소 등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국 마다 차이를 보인다. 대만은 연 1~3회 벼 재배가 가능할 정도로 기후 조건이 우수하여, 2010년대 중반부터 쌀 자급률 100% 전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2020년 기준 쌀 자급률은 110.1%에 달하지만, 전체 곡물 자급률은 28.4%에 불과하다. 특히 옥수수(3.0%), 밀(0.1%) 등의 자급률이 낮아 벼 대체작물에 대한 지원과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1971년부터 ‘감반(減反)’ 정책을 도입해 벼 재배면적 자체를 줄이고, 보조금으로 타 작물 재배를 유도했다. 비록 2018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대체작물 재배를 장려하는 다양한 정책이 운영 중이다.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약 38%이며, 밀, 콩, 잡곡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에서 벼 대체작물로 주로 재배되는 품목은 대두(黃豆·黑豆), 하드콘(硬質玉米), 고구마(甘藷), 차가라즈(薏苡), 메밀(蕎麥), 들깨(胡麻), 샹차오(仙草) 등이다. 특히 중부지역 축산시험소에서는 벼 품종(Taichung 17호)을 활용해 돼지·닭 사료의 50~75%를 대체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며, 고구마도 일정 비율 사료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고구마를 포함해 팥, 들깨(시소), 메밀, 조, 율무, 왕골(Zizania latifolia), 아피오스(Apios americana) 등 다양한 대체작물이 벼 대신 재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할 작물은 바로 고구마다. 전남 해남군은 국내 최대 고구마 산지이며, 함평군 등 전남 각지에서도 밭작물로 널리 재배된다. 그러나 고구마는 일반적으로 습한 토양에 약하고, 논흙(점토질)에서는 뿌리 비대가 어렵고 병해 발생률이 높아 논에서는 기피되는 작물이다. 하지만 대만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논 재배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 배수로 확보, 고랑(두둑) 조성, 토양 개량 등 기술적 보완을 통해 논 고구마 재배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대만에서는 Tainung No. 73 품종을 개발해 재배를 권장하고 있으며, ha당 10t 이상의 수확량을 기록하고 건강식품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도 다이치노유메(Daichino-Yume), 코나호마레(Konahomare), 시로유타카(Shiro-Yutaka) 등 논 전환형 고구마 품종을 육성해 전분 수율이 높은 가공용 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논에서는 벼, 밭에서는 고구마’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시장과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 방식을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다. 동시에 벼 품종 역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여 기존 밭벼를 기초로 건조에 강한 품종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 농업은 전통의 틀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 기후 변화와 시장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전라남도의 ‘전략작물 산업화 지원사업’은 이러한 전환의 사례인데,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 지원사업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는 작물 전환에 적합한 품종 육성과 재배 기술, 가공·유통 인프라까지 연계된 종합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이 정착된다면, 식량 자급률 제고와 농가소득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전환의 흐름 속에서 적극적인 정책 대응과 노력을 해 전남 농업이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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