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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농업의 미래, 인문학에 달려 있다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2025-05-20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는 ‘한국 농업의 뿌리’라 불릴 만큼 깊은 농경 문화의 전통을 지닌 지역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발원한 맑은 물, 영산강을 따라 펼쳐진 비옥한 평야, 남해의 온화한 기후는 이곳을 쌀, 채소, 과일, 특산물의 보고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남 농업은 고령화, 시장 불균형, 농촌 공동체의 해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단순한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사람’과 ‘삶’에 주목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농업은 로봇, 인공지능(AI), 스마트팜 기술 등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농산물이 점점 획일화되고 공산품과 같은 이미지로 소비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기술의 표준화로 지역 간 생산물의 차이가 줄어드는 시대에는, 전남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가진 ‘이야기’, ‘정체성’, ‘전통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전남 고유의 자연과 사람, 문화가 담긴 농산물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학이 결부되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전남 농업의 미래 경쟁력이자 존속의 핵심이 된다.

 

농업은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 언어, 공동체, 신념을 아우르는 총체적 문화 행위다. 들녘에서의 협동, 절기마다 지켜온 세시풍속, 지역 고유의 음식과 말씨, 관혼상제는 모두 농업을 매개로 형성된 인문적 유산이다.

 

전남에는 아직도 품앗이, 계 같은 공동체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장 담그기, 전통 혼례 음식, 제사 문화도 농업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산업 중심의 개발 논리 속에서 이 소중한 문화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현재 전남 유산농업은 농업의 변환기를 가져온 근대 농업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고령자분들의 사망과 함께 급속하게 없어지고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따라서 전라남도 농업기술원에서도 기술 혁신과 더불어 ‘농업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병행해야 한다. 농업기술원이 단지 작물 연구와 재배기술 보급, 기계 활용법을 넘어, 농업인의 삶과 문화,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하는 역할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전라남도농업박물관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다. 박물관은 과거의 농업문화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오늘날 농업이 지닌 인문적·문화적 가치를 되살리는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특히 두 기관은 협력하여 전남 농업의 유·무형 유산을 조사·기록하고, 이를 콘텐츠화하여 교육과 체험, 정책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무형유산은 고령 농민들이 간직한 지식과 경험에서 비롯되며, 시간이 흐르면 되돌릴 수 없는 자산이 된다. 지금이라도 농사 도구의 제작법, 지역 음식의 전승법, 마을 의례 등의 무형유산을 구술 기록과 영상 등의 방식으로 수집·보존하는 사업이 절실하다.

 

더 나아가 전남 농업은 국가적 문화주권의 차원에서도 보호되어야 한다. 최근 중국 길림성에서 비빔밥, 김치, 농기구 제작기술 등 조선족 문화를 무형유산으로 등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는 전남 농업과 무관하지 않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것이 우리의 기록과 보존 없이 외부에 의해 정의되고 소유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기술원과 농업박물관이 협력하여 이러한 문화유산의 보호자이자 창조적 재해석의 주체로 나서야 할 이유다.

 

해외에서도 농업과 인문학의 결합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모닝사이드 대학(Morningside University)은 ‘애그리컬처럴 휴머니티즈(Agricultural Humanities)’라는 부전공 과정을 통해 농업의 역사, 문학, 윤리, 환경을 통합적으로 교육한다. 이는 농업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토지의 관계로 바라보는 인문학의 시선이 교육, 정책, 문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전남 농업의 미래는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삶과 자연, 공동체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농산물이 기술로만 기억될 때, 그것은 상품에 불과하지만, 이야기가 결합되면 문화가 된다. 전남 농업이 미래에도 활기 있게 살아 숨 쉬려면, 인문학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전남 농업의 뿌리이자, 그 미래를 여는 열쇠다.

 

참고자료

허북구. 2024. 전남농업박물관, 농업무형유산 콘텐츠화 적극 나서야|.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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