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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2000년 다시 두드린 "비밀의 문" 대성동고분박물관 금관가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김해~ 2019-01-16
윤경숙 kmb2578@daum.net

1991년 1월8일 대성동고분군 국가사적 제341호로 지정되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26(대성동)에 위치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유물을 상설전시하는 주전시관과 대형무덤 2기를 발굴당시의 모습으로 야외에 전시한 노출전시관, 기획전시와 교육을 시행하는 기획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설전시는 일반인이 재미있게 관람하면서 쉽게 금관가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복원품과 모형품, 첨단의 영상기법 등을 동원하였다. 주전시관의 외형은 남성상을 표현한 국립김해박물관에 대비되게 여성상을 표상으로 하였고, 기획전시관은 가야여성의 대표상인 수로왕비 허 황옥의 신행길을 참고하여 파도모양으로 형상화하였다.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龜旨峰)과 김해패총(金海貝塚)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인접하여 김수로 왕릉이 있다. 즉, 공설운동장의 바로 북쪽 뒤편에 표고 22.6m의 '왜(애)꼬지'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경성대학교박물관에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금관가야 지배자집단의 공동묘역으로 판명되었다.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 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들이 형성 되어 있었다. 조사된 무덤은 총 136기로서 종류는 목관묘(木棺墓), 목곽묘(木槨墓), 옹관묘(甕棺墓), 석곽묘 (石槨墓), 횡혈·횡구식석실묘(橫穴·橫口式石室墓)이다. 이 가운데 목곽묘가 묘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릉의 능선부에 형성된 대형의 목곽묘들은 매장주체부의 크기와 부장유물의 질과 양에서 3 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걸쳐서 형성된 금관가야 지배자들의 무덤이며 특히 이 유적의 대형 목곽묘(木槨墓) 조사를 통해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3세기말을 기점으로 하여 처음으로 사람과 말(馬)을 순장(殉葬)하고, 무기를 구부려 부장하는 습속과 함께 기마용(騎馬用)의 철제갑주(鐵製甲胄), 북방 유목민족적 묘제, 마구류(馬具類), 도질토기(陶質土器), 오르도스형 동복(銅復) 등 북방유목민족의 습속과 유물이 다량으로 반영 되거나 출토되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巴形銅器), 각종 벽옥제(碧玉製)의 석제품(石製品)등 고대 일본과의 교섭실태를 구명할 수 있는 자료의 출토 등이다. 이와 같이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사회구조를 해명하는데 으뜸가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목관묘:

목관묘는 모두 34기가 조사되었으며, 대체로 표고 9m이하의 평지(平地)나 거의 평지(平地)에 가까운 지역에 영조되었다. 목관묘의 주축방향은 7기만 남북향(南北向)이고, 나머지는 동서향 (東西向)으로서 동서향(東西向)이 압도적으로 많다. 묘광의 깊이가 10cm전후로서 거의 바닥만 잔존하는 것, 40cm전후인 것, 70cm이상의 깊은 것 등 3종류가 있다.

목관은 대체로 두께 3cm내외의 판재(板材)로 조립한 것으로서, 평면형태는 'ㅍ'자형, 단면형태는 'ㅂ'자형의 상자형태이다. 목관묘의 구조와 출토물로 보아 1~2 세기 때에 영조되었던 것으로 추정 되며 삼한시대 김해에 존재하였던 구야국의 문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곽묘:

160호분을 비롯하여 총 59기의 목곽묘가 조사되었다. 시상(屍床)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의해 2개 유형으로 나눠지는데, 이 속성은 시간적인 흐름도 동시에 반영하고 있어 시상(屍床)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또 주ㆍ부곽을 갖춘 것과 그렇지 못한 유형으로 대별되는데, 유구의 규모, 부장유물의 양, 유구의 분포빈도 등으로 미루어 전자의 경우가 이 유적의 상위계층 묘인것으로 추정된다.

160호분
예안리 최고(最古)단계의 목곽묘로서 별도의 부곽이 마련되어 있는데 예안리 유적 내에서는 가장 대형급에 속하는 것이다. 최후 단계의 와질토기와 양이부호(兩耳附壺)를 비롯한 항아리류 일색의 고식(古式) 도질토기, 철촉ㆍ철모ㆍ철부 등의 철제무기류, 골촉 등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 다량 부장되어 있었다.

138호분
4세기 중엽 무렵에 만들어진 목곽묘인데, 부곽이 별도로 딸린 구조이다. 주곽에는 큼직한 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출토 유물은 노형기대에 와질토기적인 요소가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 도질토기로 전환되고 있다.

150호분
단독 묘로서는 대형급에 속하는 목곽묘이다. 본 유적에서 유일하게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철제투구와 더불어, 유자이기(有刺利器), 철부, 철촉 등 철제 무구ㆍ무기류가 부장되어 있는 반면 토기류는 1점도 매장되어 있지 않았다.


참고:http://www.gayasa.net/02culture/02_04.jsp#daesung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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