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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서(無字書), 무현금(無絃琴)
  • 기사등록 2013-01-03 19: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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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천지 자연은 새 울음과 벌레 소리 등 모든 음향을 통해 그 뜻을 전달하고, 아름다운 꽃과 푸른 풀 등 만상을 통해 진리를 보여주고 있건만, 사람은 사물의 도리를 아는 밝은 본마음이 욕정에 가려서 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욕정을 버리고 마음을 맑게 하면, 가슴속이 밝아져서 사물의 접함에 모두 깨달음이 있게 된다. 우주의 만상은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글자 없는 책과 같다. 사람들은 이 같은 살아있는 진리를 구하려 하지 않고, 형식으로 되어있는 글자 있는 책에서 진리를 구하려 한다.

천지자연의 음향은 그 뜻을 전달하는 줄 없는 거문고와 같다. 사람들은 이 같은 진정한 음악을 익히지 않고 형식적인 줄 있는 거문고를 즐기니, 형식에 얽매여 그 핵심이 되는 정신을 잃는 것이다. 모름지기 줄 없는 거문고를 익혀야 한다.”

위 글은 명나라 신종 만력 연간에 “홍자성(洪自成)”이 짓고 우공겸(于孔兼)이 제사(題詞)를 쓴 “채근담(菜根譚)”의 “만력본” 후집 7. 8장을 해석한 글입니다.

학창시절에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접할 때마다 그 출처를 “채근담”이라 하였는데, 그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의 일부만 보면서 감탄하곤 하다가 정작 숲에 안겨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 참다운 뜻을 느껴보니 그동안 상상도 못하였던 주옥같은 진리의 바다를 접하고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시작된 잔잔한 가르침은 끝나가는 마지막 장까지 지루하거나 머뭇거리거나 받아들임에 망설임이 없어 한시도 헛되이 한눈을 팔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에 장중한 파문을 일으키곤 합니다.

진리의 샘물과 같은 성현의 말씀을 혼자서 만끽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움이 있고, 좁은 지면에 그 깊은 뜻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또한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감히 의견을 보태거나 빼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므로 이후로는 성현의 순수한 말씀으로만 엮어 은연중 표현할 뿐입니다.

“하늘이 내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내 덕을 두터이 하여 이를 맞을 것이요.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이를 도울 것이며,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만든다면 나의 도를 형통하게 하여 막힌 것을 뚫을 것이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랴.

외로운 구름이 산골짜기에서 피어나 가고 머무름이 하나도 매임이 없고, 밝은 달이 하늘에 걸려 고요함과 시끄러움을 모두 상관하지 않는다.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자는 한 때 적막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달인은 물욕에서 벗어나 진리를 보고 몸이 죽은 후의 명예를 생각하나니, 차라리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을 취하지 말라.

천지는 적연(寂然)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작용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해와 달은 밤낮으로 바삐 달리건만 그 밝음은 만고에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한가로운 때에 긴급한 것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고, 바쁜 때에는 여유 있는 풍미를 가져야 한다.

예로부터 은총 속에서 재앙이 빚어지나니, 득의했을 때 모름지기 빨리 머리를 돌리라. 실패한 뒤에 도리어 공을 이룰 수 있나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즉시 손을 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은총과 이익에는 남의 앞에 서지 말고, 덕행과 사업은 남의 뒤에 떨어지지 말라. 받아서 누림은 분수를 넘지 말고, 닦아서 행함은 분수를 줄이지 말라.

늙어서 생기는 병은 모두 젊었을 때에 부른 것이고, 집안이 쇠한 뒤의 재앙은 모두 번성했을 때에 지은 것이다.

가정에 참부처가 있고 일상생활 속에 진실한 도리가 있나니, 사람이 능히 정성스러운 마음과 화평한 기운을 지녀 얼굴빛을 화사하게 하고 말씨를 부드럽게 하여, 부모와 형제가 서로 화합하고 또한 뜻이 통하게 된다면, 그 공효(功效)가 ‘조식(調息)’이나 ‘관심(觀心)’을 하는 것보다 만 배나 나으리라.

움직임을 좋아하는 자는 구름사이 번개와 같고 바람 앞의 등불과 같으며, 고요함을 즐기는 자는 식은 재와 같고 마른 나무와 같다.

굼벵이는 더럽지만 변하여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변하여 반딧불이 되어 여름밤에 빛을 낸다.

일이 곤궁하고 세가 막힌 사람은 그 처음의 마음을 돌이켜 보아야 하고, 공을 이루어 만족한 사람은 그 말로를 살펴야 한다.

낮은데 살아본 후에야 높은데 오름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두운 데 있어 보아야 밝음으로 향함이 너무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요함을 지켜본 후에야 움직임을 좋아함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과묵을 기른 후에야 말 많음이 시끄러운 줄 알게 된다.

나라를 다스려 세상을 편안하게 하려는 자는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담박한 맛이 있어야 한다. 만일 지위를 탐하고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 있다면 밝은 정치를 펼 수 없기 때문에 혼란을 빚게 되고, 심하면 몸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된다.

하늘이 한사람을 현명하게 하여 뭇사람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건만, 세상은 도리어 제 잘난 것을 뽐내어 남의 모자람을 드러내고, 한사람을 부유하게 하여 뭇사람의 가난함을 구제하건만, 세상은 도리어 제 가진 것을 믿고 남의 가난함을 업신여기니 하늘의 벌을 받게 된다.

검약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인색이 되고 비루함이 되어 도리어 맑은 도리를 손상시킨다. 겸양은 아름다운 행실이지만 지나치면 과공(過恭)이 되고 곡근(曲謹)이 되나니, 중용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남의 악을 들을지라도 곧 미워하지 말라. 참소하는 자의 분풀이가 아닐까 두렵다. 선한 말을 들을지라도 급하게 친하지 말라. 간사한자의 진출을 이끌어줌이 아닐까 두렵다.

기쁘다 하여 가벼이 일을 승낙하지 말며, 취기로 인해 성내지 말며, 피곤하다 하여 끝맺음을 소홀히 하지 말라.

복에 일 적은 것보다 더한 복이 없고, 재앙에 마음 많은 것보다 더한 재앙이 없나니, 오직 일에 괴로운 자라야 바야흐로 일 적음이 복됨을 알고, 오직 마음이 화평한 자라야 마음 많음이 재앙 됨을 알 것이다.

글을 읽어도 성현을 보지 못하면 지필의 종이 되고, 벼슬자리에 있어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의관의 도적이 되고, 학문을 강론하여도 몸소 실행함을 숭상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참선함이 되고, 사업을 세워도 은덕 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눈앞에 피는 한때의 꽃이 될 것이다.

마음의 본체가 밝으면 어두운 방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마음이 어두우면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타난다.

천리의 길은 매우 넓어서, 여기에 조금만 마음을 두어도 가슴속이 문득 넓어지고 밝아짐을 느낀다. 그러나 인욕의 길은 매우 좁아서, 여기에 조금만 발을 들여 놓아도 눈앞이 모두 가시덤불이요 진흙탕이 된다.

땅이 더러우면 생기는 물건도 많지만, 물이 맑으면 항상 고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때 묻고 더러움도 용납할 수 있는 도량을 가져야 한다. 깨끗한 것만을 좋아 하고 혼자서만 행하려는 절조는 지니지 말라.

청백하되 능히 용납 하며, 어질되 결단을 잘 내리며, 총명하되 지나치게 살피지 아니하며, 곧되 너무 바른데 치우치지 않는다면, 이를 일러 ‘꿀바른 음식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아름다운 덕이니라.

기상은 높고도 넓되 소홀하고 광패(狂悖)해서는 안 되며, 심사는 치밀하되 자질구레해서는 안 되며, 취미는 담박하되 고적(枯寂)에 치우쳐서는 안 되며, 지조를 지킴은 엄정하되 격렬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소리가 남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건너매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내 마음을 살펴 늘 원만함을 얻으면 천하도 절로 결함이 없는 세계가 될 것이요. 내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늘 관평(寬平)함을 얻으면 천하도 절로 험악한 인정이 사라질 것이다.

문장을 공부하여 궁극에 이르면 다른 기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맞을 뿐이며, 인격을 도야하여 궁극에 이르면 본연일 뿐이다.

역경에 놓여 곤궁함은 호걸을 단련하는 한 벌의 화로와 망치이니, 능히 그 단련을 받으면 몸과 마음에 함께 이익이 되고, 그 단련을 받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모두 손해가 된다.

내 몸은 하나의 작은 천지이다. 기쁨과 성냄으로 허물됨이 없게 하고, 좋아하고 미워함을 법도 있게 한다면, 이는 곧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는 공부이다.

뭇사람이 의심한다 하여 자기의 생각을 막지 말며, 내 뜻에 맡겨 남의 말을 버리지 말며, 작은 은혜를 사사로이 여겨 대체(大體)를 손상하지 말며, 공론을 빌어 사정(私情)을 해결하지 말라.

악은 숨어있기를 싫어하고, 선은 나타나기를 싫어한다. 악이 나타난 것은 재앙이 얕고 숨은 것은 재앙이 깊으며, 선이 나타난 것은 공이 적고 숨은 것은 공이 크다.

덕은 재주의 주인이고 재주는 덕의 종이니, 재주는 있어도 덕이 없으면 집에 주인이 없어 종이 일을 주관함과 같다.

굶주리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달려가고 추우면 버리는 것은 인정의 공통된 병폐이다.

군자는 냉철한 눈을 깨끗이 닦을 것이요, 삼가 굳센 마음을 가볍게 움직이지 말지니라.

입은 마음의 문이니, 입을 지킴이 엄밀하지 못하면 마음의 참 기틀이 모두 누설된다. 뜻은 곧 마음의 발이니, 뜻을 막음이 엄격하지 못하면 마음이 옳지 못한 길로 달린다.

남을 꾸짖는 자는 허물 있는 속에서 허물 없음을 살피면 뜻이 평온할 것이요, 나를 꾸짖는 자는 허물 없는 속에서 허물 있음을 구하면 덕이 나아가리라.

내 몸을 반성하는 자는 부딪히는 일마다 모두 약석이 되고, 남을 탓하는 자는 생각하는 것마다 모두 스스로를 해치는 병인이 된다. 하나는 이것으로 모든 선의 길을 열고, 하나는 이것으로 모든 악의 근원을 이루나니, 이 두 가지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니라.

한 가지 생각으로 귀신의 금계를 범하며, 한 마디의 말로 천지의 화기를 상하며, 한 가지 일로 자손의 재앙을 빚나니, 가장 절실히 경계할 것이니라.

덕은 사업의 기초이니, 기초가 굳지 않고서 집이 오래가는 법은 없느니라. 마음은 후예의 뿌리이니, 뿌리가 심어지지 않고서 가지와 잎이 무성할 수는 없느니라.

선을 행하고도 그 이익을 보지 못하는 것은 풀 속의 동과와도 같아서 모르는 중에 절로 자라나고, 악을 행하고도 그 손해를 보지 않음은 뜰 앞의 봄눈과도 같아서 반드시 남모르게 스러진다.

하루 해가 이미 저물었어도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 한 해가 장차 저물려 하는데도 다시 등자와 귤이 꽃다운 향기를 풍긴다. 이런 까닭으로 일생의 말로인 만년에 군자는 마땅히 정신을 백배나 더 해야 할 것이다.

매가 서있는 것은 조는 것 같고, 범이 가는 모습은 병든 것 같으니, 이것이 바로 그것들이 사람을 움켜잡고 무는 수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총명을 숨겨 나타내지 않고 빛나는 재능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나니, 그래야만 비로소 큰 임무를 어깨에 짊어질 역량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군자는 환난에 처하여서는 근심하지 않고 연유(宴遊)에 당하여서는 근심하며, 권세 있는 자를 만나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만나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옛 친구를 만나면 의기를 더욱 새롭게 하고, 은미(隱微)한 일에 처하면 마음을 더욱 분명하게 하며, 불운한 사람을 대우함에는 더욱 은례(恩禮)를 융숭하게 하여야 한다.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한 가운데서 인생의 참 경지를 보고, 맛이 담박하고 소리 드문 곳에서 심체의 본연(本然)을 안다.”고 전집을 맺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미처 소개하지 못한 귀한 말씀들이 지천으로 있음에도 시간과 지면의 곤궁으로 다 적지 못함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후집에 대해서는 추후에 별도의 장을 통하여 적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에 사족을 달아 현인의 귀한 뜻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하여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여 기재한 점 엎드려 넓은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현자께서는 아마도 고금의 모든 사상과 정신세계의 수련을 통하여 오묘한 인간세상의 문제를 대오 각성하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비록 글자로 적혀진 문장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대자연의 모습에서 꾸밈없이 우러나는 진리를 표현한 글자 없는 책이 틀림없으며,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 울음과 풀벌레 소리 등, 줄이 없는 거문고의 은은한 연주를 행간에 숨겨두신 것으로 더 이상의 찬양과 칭송이 무색한 표현 그대로의 “무자서” “무현금”의 찬란한 발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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