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사람의 일상 중에는 좋은 일도 있겠지만 나쁜 일도 허다하게 많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풍요로운 시기를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곤궁할 때의 쓰라림이 미처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고, 몸이 노쇠하여 병이 들면 지나간 날들의 화려하였던 추억만이 메마른 가슴을 스쳐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삶이 곤궁해지거나 병마가 찾아드는 인생의 궁핍해지는 시기가 되면 지나간 날들을 보다 건전하게 보내지 못한 회환과 함께, 여력이 충만하였던 시절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다 베풀지 못하였던 아쉬움이 가슴을 후비며 지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가 정신적으로 연약해지면 일단은 패배의식으로 건강을 회복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지는데, 문병인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마음을 여리게 하는 것보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태도와 말 한마디가 오히려 필요할 것입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문병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동안 건강 할 때 보았던 지인들의 쇠락한 모습에서 때로는 나에게도 저러한 날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알지 못할 전율을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층을 달리하여 몸의 온갖 부위 고통으로 인하여 종합병원의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의 틈 사이를 서둘러 지나가다 보면 새삼스레 건강한 현실이 너무나도 고마워지는 것입니다.
저 역시 몸을 크게 손상하여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장기간의 투병을 한 경험이 별로 없으며, 어지간하게 아파도 병원을 잘 찾지 않는 습성으로 다른 사람의 투병 사실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이따금 냉정하게 보여 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쫒아간 병실의 화분에는 오로지 흙만이 담겨져 있어 문을 고정시키는 역할로 사용되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꽃이 없는 화분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보여 지는 것은 물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말로만 듣던 불행
이 나에게도 닥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에 떨려오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불상사 없이 무탈하게 넘어가는 순간에 가없는 은총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이따금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힘들게 길을 가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건강하게 활동을 하는 스스로나 주변의 모든 상황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의 온전한 능력을 조금이라도 쪼개어 나누거나 돌보려는 마음이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거친 세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영어의 몸이 된 채, 기나긴 날들을 후회의 날로 보내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힘들고 고단하게 엮어가는 인생일지라도 새로이 느껴지는 자유가 고맙기도 할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자유로이 하고 비록 하루의 노동으로 연명하는 인생일지라도 스스로의 의사와 판단으로 살아가는 현실에 만족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만인을 향하여 공평하게 내리고,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햇볕이나, 나뭇잎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손바닥 만한 하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줄을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1950. 6. 25. 전쟁의 폐허 위에 새롭게 건설한 우리나라가 그동안의 피맺힌 노력에 의하여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거대한 경제구조로 성장하여 어느 듯 아시아를 비롯한 주변의 나라를 보다 능가하는 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다른 나라의 원조에 의존하던 시기를 극복하고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경제구조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으로 나라의 장래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관점을 달리하여 바라보면 오히려 만족을 해야 할 형편인 것입니다.
국내에서 온갖 어렵고 힘든 분야에서 거친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사실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의 마음으로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적은 임금일지라도 꾸준하게 모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을 것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로 1950년대의 중반이 지나갈 무렵 우리의 누나들과 형님들이 독일의 광부나 간호사로 나가서 피땀 흘려 외화를 벌어들여와 오늘의 부를 이루는 발판으로 삼았던 현실을 돌아보면서 힘들고 외로운 그들이 바로 엊그제의 우리 형제나 다름없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80달러로, 300달러의 필리핀을 무던히도 부러워하면서, 폐허 위에 복구를 하여야 할 최소한의 자본과 자원이 고갈된 상태로 참으로 궁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은 분단의 아픔과 함께 전쟁의 참화를 겪어낸 나라에 무상으로 원조하기에 앞서,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며 자국의 꺼려하는 직종의 인력을 확보하는 기발한 시책을 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자연스런 여건에 의하여 최소한의 작은 자금일지라도 국가재건에 필요한 기틀을 조성하고, 이를 담보로 차관을 들여오는데 성공하여 오늘날의 재벌기업을 이룩하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축복이 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매스컴을 통하여 접하게 되는 통제된 북한 사회의 실상과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하여 헐벗고 굶주리는 참상을 마주하다 보면, 굶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 되는지를 새로이 깨닫게도 될 것입니다.
연간 우리의 식단에서 사라져 가는 약 수십조 원대의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해보면, 보다 정돈되고 합리적인 식사문화를 정립하고 아껴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아량도 필요할 것입니다.
절제를 잃은 과다한 영양분의 취식으로 비만이 깊어지면 또 다른 비용을 투자하여 반대로 에너지를 태워 몸매를 만들어가는 것은 앞뒤가 어긋나는 비효율이 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의 휴게음식점이나 결혼식장의 뷔페식당의 접시에서 손도 대지 않고 쓰레기로 전락하는 음식물을 보면서, 한 톨의 쌀이 생산되는 데에는 더도 덜도 없는 1년의 세월이 소요 된다는 생각으로 필요없는 낭비를 줄이는 적정한 음식물의 관리가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보도하는 화면 중에 마치 우리의 1960년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포장이 안 된 장터에 비가 내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까만 죽처럼 된 땅바닥에 군관 두 명이 게를 씹어 먹고 뱉어내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소년이 달려들어 껍데기를 주워 먹는 장면을 시청하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얼얼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 학생들이 무슨 죄로 그토록 굶주려야 했는지 만약에 우리들의 자녀들이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이미 무너지고 없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산재하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정권의 나라들에서 기아로 신음하거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도 합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날마다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어린아이들까지 일터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의 현실을 방치하거나 잘못된 정치제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돌이켜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겸양의 미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섬마을 대장간을 운영하였던 어느 아버지가 수많은 세월을 불꽃만을 바라보는 동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실명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자식들이 정성스레 마련하여준 생선 덕장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모습을 촬영한 인간극장 “아버지의 바다” 5부작은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들은 세상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눈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소박한 기쁨에 젖어드는 것입니다.
무언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은 빈곳을 채울 수 있는 여력이 있고, 언젠가는 부족함을 메울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삶의 의욕이 북돋아 지는 것입니다.
항상 낮은 자세를 취하다 보면 상대방으로부터 질타를 당할 일이 없으며, 돌출한 부분에 다른 물체와 부딪힐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술잔을 주고받거나,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항상 겸손하게 하고 상대방의 기준보다 높이는 일이 없고, 정중하게 대하다보면 극적인 상태에서도 본분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상대방과 다투는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나의 삶이나 건강에 크게 금이 가지만 않는다면 다소간의 불편함이 따를지라도 조그만 정 한 조각이라도 나누는 여유가 더 좋아 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은 곳으로 하여 항상 겸양하는 마음을 유지한다면 인간의 향기가 넘치는 아름답고 갈등이 없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