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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의 소녀, 철쭉
  • 기사등록 2012-05-04 09:33:22
  • 수정 2014-12-04 16: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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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지금의 사천 성)의 망제 두우는 어느 날 문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채로 떠내려 온 사나이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죽어있던 망자가 눈을 뜨고 살아나 “형주 땅에 살던 ‘별량’이라고 밝히고 강에 나왔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하여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고 하므로 망제는 필시 하늘이 어진 이를 내린 것이라 믿고, 집과 여자와 벼슬까지 내려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도록 배려를 하였습니다.

한번 죽어서 극적으로 목숨까지 구한데다 모든 것을 덤으로 얻은 것은 진정 하늘의 은총이 내린 것으로, 의당 현실을 만족하고 하해와 같은 은혜에 보답하여야 하였음에도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는지 몰라도 ‘별량’은 불순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예쁜 딸을 망제에게 바쳐 정사를 뿌리치고 색정에 빠지도록 한 다음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왕위마저 빼앗고 나라밖으로 쫒아내니 그 원통함이 하늘에 뻗쳐 참을 수 없어 스스로 죽어 원조(怨鳥)로 환생을 한 것입니다.

“불여귀(돌아감만 못하다)”를 부르짖으며 목구멍에서 피가 터지도록 울어대니 그때마다 흩어지는 핏물이 꽃잎을 적시어 생겨난 꽃이 진달래로 헌화된 것입니다.

귀촉도, 망제혼, 불여귀, 자규, 접동새, 두견새로 불리는 비운의 새는 불쌍하고, 애처럽고, 원한에 사무치고, 안타까운 동정심이 드는 존재로 산야를 울리는 울음소리조차 처량하게 들려 때로는 가슴을 울렁거리게도 합니다.

두견새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소쩍새는 사실은 올빼미과에 속하는 전혀 다른 조류로서 밤에만 울어대는 습성으로 우리가 두견새의 울음으로 착각을 한 채, 이미 오랜 세월동안 고착이 되어 혼용되고 있습니다.

두견새는 낮에만 우는 새로 이보다 덩치가 큰 뻐꾸기와는 같은 두견이과에 속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통한 설화를 바탕으로 태생한 두견새는 휘바람새 또는 꾀꼬리가 지은 남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아 대리로 부화하여 양육을 시키는 편법으로 위태로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과의 뻐꾸기 또한 때까치, 지빠귀, 붉은 머리 오목눈이의 둥지에서 기존의 알을 제거하고 비슷한 문양을 갖춘 자신의 알을 낳아 대리모의 원래 새끼들을 도태시키며 자라도록 합니다.

일본 뻐꾸기는 개개비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다른 알보다 빠르게 부화하여 정작 개개비의 진짜 새끼들은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둥지 밖으로 잔인하게 밀쳐내는 것입니다.

연약한 개개비는 자신보다 몇 배나 되는 남의 새끼를 위하여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먹이를 물어 나르며 원죄의 싹을 날마다 키워가는 것입니다.

뻐꾸기는 대리모들이 눈치를 채고 자신들의 후손에 대하여 포육을 포기할 경우에는 그 집을 철저하게 부수거나 새롭게 만든 다른 둥지까지도 제거를 하는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는데, 애처러운 운명을 타고난 새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라를 빼앗긴 복수의 생리로 풀어 본다면, 최소한의 논리가 느껴지거나 더욱 더 소름끼치는 처절한 업보의 화신으로 비견되기도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서럽게 보이는 새는 그 뜻을 무한히 연장시켜 진달래꽃과 접목을 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외침을 견뎌내야 했던 우리민족의 애잔한 삶의 질곡을 무언으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고대 역사에 있어 ‘한 화’와 ‘천지 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현대적인 의미의 어떠한 꽃과 관련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무궁화와 진달래로 추정이 되면서 꽃잎에 핏빛과 같이 진한 붉은색이 서려 있는 것이 공통점으로 나타나고 은연중 고단한 민족의 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봄이 되어 이른 4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는 꽃잎부터 세상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이로부터 1개월이 지난 5월경부터 잎과 함께 꽃잎을 펼치는 철쭉이 우리 산야의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깊은 산천을 막론하고 현란하게 피어나는데 화려함이 극치에 달하는 것입니다.

영산홍이라 불리는 산철쭉은 고려시대부터 우리 강산에 깔려있던 것을 일본사람들이 열도로 가지고 가서 개량하여 전파를 하였는데, 연산홍이라 부르기도 하고, 왜 철쭉이라고도 하지만, 재래의 영산홍은 기존의 철쭉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꽃을 6월경에야 피우므로 똑같은 수종인데 어찌하여 뒤늦게 피어나는지 의아스럽게 할 정도로 구분이 거의 힘들다고 합니다.

은은하고 소박한 진달래는 식용이 가능하여 참꽃이라 불렸으며, 화려하고 진한 색깔의 철쭉은 독이 있어 식용이 불가능하여 개 꽃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철쭉과 영산홍은 진달래 목, 진달래 과, 진달래 속에 해당하는 꽃으로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같은 부류의 꽃으로 취급할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국토 어디에서나 피어나는데다 요사이는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여 새롭게 세우는 건물들의 화단이나 석축, 담벼락에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농염하게 무르익은 봄날,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하는 친근한 꽃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산천경개의 무상한 세월을 지켜오면서 대를 이루어 번성한 철쭉의 군락지를 지역마다 개발하여 축제의 마당으로 현출시킨 향연들이 우리의 예상을 초과하여 전국에서 총 24개나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철쭉제는 한라산 철쭉제로 1967. 5. 26부터 그 다음날까지 최초의 행사를 치른 이후 무려 45년에 이르고, 합천과 산청의 황매산 축제와 단양군 소백산 축제는 사람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왔으며,

보성 일림산의 철쭉 군락지는 무려 1백만 평에 이르러 동양최대 아니면 세계에서도 으뜸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철쭉의 군락지를 따라 마치 꽃의 터널을 지나는 느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바람결에 마주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백만 대군을 열병하는 제왕과도 같은 최고의 황홀경을 만끽하게 해 줄 것입니다.

산의 높은 곳에 올라서서 능선과 작은 봉우리들을 따라 검붉은 꽃물을 들여 수놓은 듯한 산야를 바라다보면, 그야말로 어머니나 애틋한 연인의 가슴처럼 포근하여 짜릿한 추억을 아낌없이 뿌려 주기도 할 것입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의 문턱에서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산이 만인을 향하여 평등하게 베풀어 놓은 무한한 정기를 받아 들여 깊고 깊은 산중의 고고한 철쭉을 만나 애모의 정을 마음껏 나누어 보는 것도 뜻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무와 사람과 꽃이 어우러지고 봄날의 정취를 한껏 품은 바람들이 산록을 타고 달려오는 꿈의 동산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새기다 보면 새롭게 솟아나는 삶의 원동력을 무심코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척박한 돌밭에서 소나무나 다른 잡목들의 거친 도전을 뿌리치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애써 구축하여 엄동설한의 시련을 해마다 이겨 내는 것도 힘이 들 터인데도 때를 맞추어 숨겨 두었던 비련의 색깔을 일제히 토해내니 천변만화로 비추어지는 대자연의 숭고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바람에 몸을 맡겨 사방으로 흔들어 대는 꽃잎들은 마치 요즈음 세계인의 무대를 아름다운 몸매로 낭창거리며 흔들어대는 소녀시대의 율동이나 춤사위와 매우 흡사하여 사람의 마음을 격정적인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외딴 산정에서 맞이하는 소녀와 같은 꽃잎 들은 능히 메마른 사람들의 거친 가슴을 풀어 삭막한 현실의 벽을 허물고, 해맑은 아름다운 나래로 인간의 지친 심신을 포근하게 감싸는 희열을 아낌없이 내려주기도 할 것입니다.

번거러운 일상을 탈피하여 단 하루만이라도 꽃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신심으로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촌음의 여유가 또한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불현 듯 취해오는 꿈결 같은 소녀들의 흥얼거림에 나를 맡겨 세상만사 모두 잊어버리고 때로는 무아지경의 황홀함에 빠져보는 것도, 잔잔한 감흥이 일어나는 삶의 은근한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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