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 문빅토르 화백이 신작 ‘항해선’을 통해 인간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깊은 내면세계를 특유의 상징적 조형언어로 풀어냈다.
30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문 화백의 2026년작 ‘항해선’은 종이에 수채화와 아크릴로 제작한 61.5×79.5㎝ 크기의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물 위와 아래를 함께 드러낸 한 척의 배를 배치했다.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수면 아래 잠긴 거대한 선체다. 문 화백은 이를 통해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외면뿐 아니라 쉽게 드러나지 않는 깊은 내면이 함께 존재한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작품 상단의 배는 흰빛과 푸른빛이 감도는 비교적 선명한 형태로 묘사됐다. 굴뚝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들이 솟아 있고, 뱃머리는 새나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인 모습으로 길게 뻗어 있다. 배 안쪽에는 복잡하게 얽힌 선과 작은 형상들이 빼곡히 자리해 한 사람의 삶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수면 아래는 짙은 청색과 검은색을 중심으로 더욱 무겁고 복잡하게 표현됐다. 뒤엉킨 형상과 반복되는 선, 얼굴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이 중첩돼 마치 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과 상처, 두려움과 욕망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의 핵심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비’에 있다. 우리는 흔히 말과 행동, 표정과 외모처럼 눈앞에 드러난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나온 시간과 상처, 관계의 기억과 감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은 채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문 화백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항해하는 배에 겹쳐 놓았다. 수면 위의 배가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외면의 나’라면, 물속 깊이 잠긴 선체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나’다. 물 위와 아래가 하나의 배를 이루듯 인간 역시 외면과 내면이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온전한 한 사람을 이룬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작품 속 배가 멈춰 있기보다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모습도 의미를 더한다. 자신의 내면에 수많은 기억과 상처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그 무게를 안고 삶이라는 항해를 계속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표현은 문 화백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이동’이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강제이주와 유랑, 새로운 땅에서의 정착을 경험한 고려인의 역사처럼 그의 작품 속 인물과 사물들은 한곳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이동하고 견디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세밀한 선과 반복되는 문양도 이러한 정서를 강화한다. 수없이 겹쳐진 흔적들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시간이 쌓인 자국처럼 보이며, 한 사람의 마음속에 수많은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항해선’은 단순히 한 척의 배를 그린 작품이 아니다. 작품 속 배는 인간 그 자체이며, 넓은 바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읽힌다.
수면 위에 드러난 모습만으로 배 전체를 알 수 없듯, 사람 역시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 화백이 작품을 통해 건네는 메시지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문빅토르 화백의 ‘항해선’은 사람을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간과 마음속 사연까지 함께 헤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다문화사회에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고려방송: 임용기(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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