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2000년대 초반에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며 제 영화 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땐 망망대해에 표류한 느낌이었어요.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파도에 쓸려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노력했던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영화를 완성하고 나면 마침내 우뚝 서는 기분이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히는 지아장커 감독은 5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약 30년간 이어진 영화 인생을 이렇게 돌아봤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지아장커 감독의 '풍류일대'에는 감독의 과거 작품인 '임소요'(2002)에서 연인으로 등장한 빈빈과 차오차오가 세월이 흘러 재회하고 헤어지는 과정이 담겼다.
감독 본인이 2001년 중국을 여행하며 찍은 영상과 최근 찍은 영상을 결합해 과거부터 현재가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연출했다.
그는 2020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서 쌓아두기만 했던 필름을 꺼내 보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팬데믹을 겪으며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변모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넷,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이 물밀듯이 몰려오면서 우리의 생활 방식도 변하는 것 같았죠. 이런 시기에 제가 이전에 촬영한 영상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아장커 감독의 아내인 자오타오는 '임소요'에 이어 이번에도 차오차오 역을 소화했다.
그 역시 '풍류일대'를 통해 연기 인생을 되짚어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 남편으로부터 '임소요'와 이어지는 내용의 영화를 촬영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상당히 걱정됐다"고 돌아봤다.
"예전에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20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하는 동안 배우고 깨달으며 변화도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예전 촬영분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캐릭터를 최우선으로 놓고 연기하는 방식이 지금과 같았거든요."
원래 무용학도였던 자오타오는 지아장커 감독의 '플랫폼'(2000)을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스틸 라이프'(2006), '천주정'(2013) '산하고인'(2016), '강호아녀'(2018) 등 지아장커 감독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했다.
자오타오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저만의 세계에 살고 있었지만, 남편과 같이 영화를 찍으며 점차 바뀌었다"고 했다.
"감독님이 주목하는 인물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자기가 카메라에 찍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항상 해왔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감동했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됐어요."
지아장커 감독은 급격히 변하는 중국 사회 속 인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풍류일대'를 통해서도 지난 20여년간의 중국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가 나오는 영화 전반부에는 여자들이 강당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지만, 코로나19 시기를 배경으로 한 후반부에는 로봇이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중국 사회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는 지아장커 감독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베이징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2000년대 중국 사회는 들뜨고 열정이 넘쳤다"며 "하지만 이후 지켜야 하는 규칙이 늘었고 사람들은 말이 줄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의 중국에도 관심이 크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련 이야기를) 만들겠다"면서도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는데, 이 작품도 촬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아장커 감독은 신도시 개발 노동자인 남자가 떠나간 아내를 찾는 과정을 그린 '스틸 라이프'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배금주의와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라본 '천주정'으로는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가져가는 등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감독이다.
지아장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부산국제영화제는 1998년 신인상에 해당하는 뉴 커런츠상을 그에게 안겼다.
지아장커 감독은 "저의 영화 인생이 부산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당시 또래 감독들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우정을 쌓은 기억이 있다. 늘 부산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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