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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노을 - 이순애
  • 기사등록 2023-01-09 16: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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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에 와서 눈꽃을 본다

허공의 노독이 선창에 매달려 있다

먼 동쪽에서 온 빛이 물비늘에 부서진다 


해안선엔 꽃술 흔드는 겨를이 있고

물색을 바꾼 눈주름이 생긴다

사람 속에 사람이 없듯이

물속 말들이 휘이잉 부풀다 잦아들면

등대 모서리엔 접시 눈꽃이 핀다

 

눈이 비린 검은 눈이 내리고

밤새도록 파도가 파도를 넘는다

사람 속을 오래 걷는 저녁을 생각하면

어디라도 박지는 항로를 잃는다 

 

선실에는 기름얼룩이 자라고

철부선은 흰 기침을 해대고

물새는 항구 유리창에 눈꽃을 물어다 놓는다

 

부박한 유령선은 저린 발목 절며 계절을 나르고

백안을 적은 홍채 좁은 골목이 자오선을 당긴다

북항의 흰 봄밤 몇 장이 팔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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