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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그림이야기, 문빅토르 작 '붉은열차’ -잿빛 연해주를 파고드는 붉은 기관차…강제이주와 국가폭력의 상흔 형상화 2026-09-08
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거장 문빅토르 화백이 신작 ‘붉은열차’를 통해 고려인 선조들의 삶을 뒤흔든 역사의 폭력을 강렬하게 되살렸다.

8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문 화백이 2026년 제작한 ‘붉은열차’는 종이에 수채화로 그린 62.5×77.5㎝ 크기의 작품으로, 고려인 선조들의 피어린 삶과 강제이주의 기억이 서린 연해주를 배경으로 한다.

연해주는 고려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기 전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삶의 터전을 일군 대표적인 정착지다. 문 화백에게도 선조들의 수난과 자신의 뿌리가 맞닿아 있는 역사적 기억의 공간이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 오른쪽에서 도시 한복판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붉은 증기기관차다.

집과 공장, 종교 건축물, 철로와 수많은 군중은 푸른빛이 감도는 잿빛으로 촘촘하게 묘사됐지만, 단 한 대의 열차만 선명한 붉은색으로 강조됐다. 강렬한 색채 대비는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붉은열차’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선 상징임을 보여준다.

작품 속 붉은 열차는 고려인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든 소련 공산체제와 국가권력의 억압을 상징한다. 거대한 기관차가 사람과 집들 사이를 가르며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평온했던 공동체의 삶을 파고드는 듯하다.

이는 국가권력이 개인과 공동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에 개입해 한순간에 운명을 뒤바꿔 놓았던 당시 고려인들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화면 곳곳에 빼곡히 들어선 기관차와 객차, 복잡하게 얽힌 철로, 수많은 군중도 작품의 의미를 더한다. 고려인 역사에서 철도와 열차는 이동의 수단인 동시에 1937년 수많은 고려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강제이주의 아픈 기억과 맞닿아 있다.

특히 작품 속 인물들은 개별적인 얼굴보다 거대한 군중으로 표현됐다. 이는 특정 개인의 고통을 넘어 고려인 공동체 전체가 겪어야 했던 집단적 수난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문 화백은 강제이주와 탄압의 참혹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와 기관차, 빽빽한 도시와 군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르며 들어오는 붉은 열차를 통해 역사적 폭력의 무게를 전달한다.

이 때문에 작품은 관람객에게 강제이주의 비극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국가권력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묵직하게 되묻게 한다.

문빅토르 화백에게 연해주는 강제이주 이전 선조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갔던 땅이자, 이후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고려인 역사의 출발점과 같은 공간이다.

따라서 ‘붉은열차’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작품을 넘어, 후손인 작가가 선조들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 오늘의 세대와 연결하는 디아스포라의 역사화로 읽힌다.

광주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문빅토르 화백의 ‘붉은열차’는 국가권력이 한 공동체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잿빛 도시를 칼날처럼 파고드는 붉은 열차에는 강제이주와 억압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고려인 선조들의 아픈 기억이 응축돼 있다”고 말했다.

고려방송: 이부형(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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