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아홉 번째 인물로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박경심(朴敬心·1857~미상) 선생을 선정해 그의 생애와 항일독립운동을 재조명한다고 18일 밝혔다.
함경북도 경흥 출신인 박 선생은 1880년 무렵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수찬(水淸) 지역 한인마을 니콜라예프카(신영동)에 정착했다. 농사와 음식점 경영으로 생활 기반을 마련한 뒤 지역 한인사회의 유력 인사로 성장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박 선생은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단체 권업회(勸業會)에 참여했다. 권업회는 최재형과 홍범도 등 연해주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참여한 단체로, 한인들의 생활 안정과 친목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항일 세력을 조직하고 독립운동 기반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업회는 한인들의 실업을 장려하고 직업과 일터를 알선하는 한편 저축을 권장하고 상애(相愛)·상신(相信)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표면적인 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받기 위한 방편이었으며, 실제 목표는 시베리아 한인사회 각계각층의 항일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가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조국 독립을 이루는 데 있었다.
박 선생은 권업회가 연해주 각지로 조직을 확대하던 1914년 5월 수찬 온령 지방에 설치된 권업회 지회의 부총재로 선임돼 지역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생업을 통해 쌓은 지역사회의 신망과 기반을 독립운동 조직 확대에 보탠 것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노인동맹단에도 참여했다. 같은 해 4월 수찬 지방에 파견된 차대유의 권유로 단원에 가입해 항일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노인동맹단은 1919년 9월 서울역에서 새로 부임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가 활동한 단체로도 알려져 있다.
박 선생의 항일활동은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됐다. 강우규 의거 이후 일제 블라디보스토크파견군 헌병대사령부는 그를 수찬 신영동의 유력자이자 ‘평소 배일사상을 선전하는 독립운동가’로 지목해 감시했다.
낯선 연해주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사회적 기반을 내놓은 박 선생의 삶은 당시 한인사회의 독립 의지가 세대를 넘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후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은 앞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고려인사회에 박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을 널리 알리고 후손과 관련 자료를 찾는 데 힘을 모을 계획이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박경심 선생은 연해주에서 삶의 기반을 일구면서도 권업회와 대한노인동맹단에 참여해 조국 독립에 헌신한 인물"이라며 "앞으로도 후손이 확인되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그 숭고한 삶과 정신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고려방송: 이부형(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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