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일제강점기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던 수많은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역사 속에 묻혀 있다. 그 가운데 광주 고려인마을이 찾고 있는 스물다섯 번째 인물 김광택(金光澤, 1898~1957) 역시 항일무장투쟁 기록과 후손이 확인됐음에도, 아직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광주 고려인마을이 추진하고 있는 「연해주 고려인독립운동가를 찾아서」 사업은 잊혀진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하고 후손을 찾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복원 프로젝트다.
최근 발굴된 러시아 국가기록물은 김광택의 생애와 항일투쟁을 더욱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1936년 작성된 전연방공산당 당원등록카드와 1939년 당 보고카드, 당원증 교환기록에는 김광택(김광탁)의 신상과 활동 이력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자료에는 그의 민족이 '한인(고려인)', 모국어가 한국어이며, 부모는 모두 빈농 출신으로 명시돼 있다.
특히 그는 1918년 만주 훈춘 조선학교를 졸업한 뒤 1928년 모스크바 군사보통학교를 마쳤으며, 붉은군대 지휘관으로 5년간 복무한 사실도 공식 문서에 기록돼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노동 및 군 경력이다. 당원등록카드는 김광택이 1919년 3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연해주 올긴구역에서 한창걸 부대 중대장으로 활동했음을 분명히 적고 있다. 이는 그가 항일무장투쟁의 핵심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료다.
또한 김광택의 항일무장투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21년 4월 한창걸이 이끌던 고려로농군회와 강국모의 혈성단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의 명장 김경천 장군에게 통합부대의 지휘가 맡겨졌다. 이후 부대는 수청고려의병대라는 이름으로 재편됐고, 한창걸 부대 중대장이던 김광택은 김경천 장군 휘하 수청고려의병대 소대장으로 임명돼 독립전쟁의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한창걸과 김경천 장군은 이러한 공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지만, 같은 부대의 지휘관으로 함께 싸운 김광택은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김경천 장군이 직접 남긴 『경천아일록』 에서도 확인된다.
1921년 10월 17일자 기록에는 "군대에는 김광택, 이창선 두 명의 장교가 있다. 강 부관이 그들에게 지휘하게 하였다." 라고 적혀 있으며, 1922년 5월 21일에는 "수청에서 김창섭, 김광택, 황 보리쓰 군이 왔다." 는 내용이 남아 있다.
또 1925년 9월 28일자에는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에서 교육받던 김광택이 보낸 편지에 관한 기록도 확인된다. 러시아 국가기록물과 김경천 장군의 친필 일기가 서로 맞물리며 김광택의 항일무장투쟁 사실을 입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김광택은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와 모스크바 보병학교를 졸업한 뒤 연해주 우수리스크 제76연대 훈련대대 고려인 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강제이주 이전에는 어업조합 지도원과 출판기관 소수민족 특명전권위원, 선전원, '동방의 길' 어업콜호스에서 활동했다.
1937년 강제이주로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뒤에도 그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 고려인 농업콜호스 '볼셰비크' 를 세워 회장으로 일했으며, 고려 극장의 초대 극장장으로 활동하면서 「심청전」과 「춘향전」을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또한 「조선의 노래」, 「그리워라 내 조국아」, 「조선의 딸」 등을 창작하며 고려인 문화예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41년에는 강제유형과 영양실조로 생명이 위태롭던 유대인 작곡가 일리야 떼이뗄바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돌보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훗날 다큐멘터리 「음악 선생님」 으로 제작돼 널리 알려졌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김광택의 항일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하는 공문서와 각종 사료, 후손까지 모두 확인돼 국가보훈부에 수차례 독립유공자 포상을 청원했음에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후손들은 "조국을 위해 청춘과 생명을 바친 선조의 삶이 이제라도 역사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며 하루빨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김광택은 러시아 국가기록물과 공산당 당원등록카드, 김경천 장군의 『경천아일록』 등 여러 1차 사료를 통해 항일무장투쟁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인물"이라며 "잊혀진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계속 발굴해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빈자리를 채우고, 후손들의 오랜 기다림이 하루빨리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 라고 강조했다.
한 세기가 흘렀다. 총성은 멎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 있다. 조국을 위해 총을 들었던 한 고려인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대한민국이 다시 불러주는 일. 그것은 한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수많은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온전히 기억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고려방송: 안엘레나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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