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jnnews.co.kr@hanmail.net
[전남인터넷신문]‘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개최 중인 「고려인 명예회복 특별전」이 스탈린 정권의 정치적 탄압 속에 희생된 고려인 선조들의 삶과 명예회복 과정을 조명하며 관람객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7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이번 특별전은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대숙청의 실상이 공식 비판된 1956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명예회복 7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정치적 탄압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고려인들의 삶과 복권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재판 기록, 공문서 등 다양한 역사 자료가 공개되고 있다. 특히 고려인 언론인 황동훈(1903~1938) 선생의 삶과 명예회복 과정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황동훈 선생은 1923년 창간된 고려인 한글신문 ‘선봉신문’ 의 농업부장을 역임하며 고려인 사회의 계몽과 발전을 위해 활동한 언론인이었다. 당시 선봉신문은 연해주와 극동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에게 민족의식과 교육, 생활 정보를 전달하며 민족 공동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37년 스탈린 정권이 고려인 강제이주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선봉신문 간부들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숙청된 가운데, 황동훈 선생은 간부들 중 유일하게 체포를 면해 가족들과 함께 강제이주 열차에 몸을 싣고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강제이주 이듬해인 1938년 6월 26일 다시 체포됐다. 이후 반혁명 혐의라는 허위 죄목 아래 희생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고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당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역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억울한 죽음은 영원히 묻히지 않았다. 사망 후 23년이 지난 1961년 5월 30일, 투르케스탄 군관구 재판소는 재심을 통해 황동훈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따라 그의 명예도 공식적으로 회복됐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황동훈 선생의 삶은 스탈린 시대 정치적 탄압이 개인과 공동체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고려인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늦게나마 명예를 되찾은 선조들의 삶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고려인문화관은 고려인 선조들의 항일독립운동사와 1937년 강제이주사, 생활사, 한글문학 등 국가지정기록물 23점을 포함한 1만2천여 점의 역사유물을 소장·전시하고 있으며,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외에 알리는 대표적인 역사문화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고려인 명예회복 특별전」은 2027년 4월 30일까지 고려인문화관 특별전시관에서 계속된다.
고려방송: 유가이 발레르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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