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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서 전라도 목포까지, 나는 중학생 - “도대체 무슨 운동 하셨나요?” 의사선생님 물음에 “평생 맺혀있던 배움…
  • 기사등록 2013-04-16 18: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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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약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목포제일정보중학교에 입학한 지 1년쯤 됐을 때, 집근처 순천향병원에 정기 검진차 들리자, 의사선생님께서 물어보신다.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해서 이렇게 좋아지셨나요?

차대순 씨는 몇 년 전부터 호흡기질환 천식에 고혈압, 고지혈증, 잇몸질환과 감기 등으로 약을 달고 살았다.

그런 그녀가 중학생이 되어 인생 2막, 삶의 반전이 시작됐다.

차대순(59세), 차삼순(63세) 씨 자매는 중학교 2학년 3반. 짝궁이다.
나란히 앉아 돋보기 너머로 공부하고 있는 자매의 고향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전형적인 농촌에서 3남 4녀의 다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먹고 사는 것은 넉넉했지만 그 마을 여자들은 공부를 안 가르치던 때였기에 중학교 입학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부끄러운 마음이 많아 부모님께 중학교에 보내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두 자매는 일찌감치 양재기술을 배워 양장점을 운영하며 처녀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냈다. 결혼 후 언니는 목포에 살고 동생은 경기도 부천에서 생활한다.

언니 차삼순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8년만인 62세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한동네 아는 사람이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를 소개해 줬을 때 입학해서 공부하고 싶기는 했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해 동생하고 통화하면서 어른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있는데 혼자 어떻게 다니겠냐. 그래서 포기했다고 하니, 동생 차대순 씨가 단 번에 말했다. “그럼 언니 나하고 같이 다니면 어떻겠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그렇게 경기도 부천에 사는 차대순 씨가 목포제일정보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2012년 3월, 경기도에서 목포까지 오가는 만학도 중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 경기도 부천 집에서 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발걸음을 옮긴다. 버스는 안산을 거쳐 5시간 만에 목포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면 다시 부천 집으로 돌아간다.

동생 차대순 씨(58세)는 경찰 공무원을 퇴직하고 경비업체에 근무하는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늦은 나이 공부를 위해 주말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뒤늦게나마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고속버스가 5시간 달리는 동안 차대순 씨는 영어 단어도 몇 개 외워보고 음악시간에 배운 ‘뷰티플 썬데이’ 노래도 흥얼거린다. 즐겁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젊었을 때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이렇게 공부여행을 떠나는 것이 기쁘기만하다.

음악을 제일 좋아하고 체육, 영어, 컴퓨터, 한문, 미술 모든 시간이 흥미롭다. 집에서 한문을 쓰고 있으면 한자급수 5급인 초등학생 손녀가 할머니 이거 틀렸어요. 하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입학하고 한두 달 동안은 몸이 피곤해서인지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넘쳐 오르는 만족감에 얼굴에서는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좋은 공기 속에서 공부하다 주말에 돌아가면 이것이 사는 기쁨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학생으로서 1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었다. 커다란 약봉지는 차차 줄어들어 이제는 약봉지와 이별을 했다.

언니 차삼심(63세) 씨는 학교에 다니기 전,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기가 죽었는데 이제는 자신감을 얻어 활발하게 대화하고 있다. 부끄러움이 많아 어디에서고 나서는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발표도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그녀가 얻은 것은, 자신감과 자신만의 노트를 가지게 된 것 두 가지다. 그냥 그때그때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한 것을 한 편 두 편 모으다 보니 노트 한 권이 다 되어간다.

<오월의 빨간 철쭉 꽃>

너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빨간 철쭉꽃아,

어쩜 그렇게 예쁘니?

너를 보면 생각나는 게 있단다.

열 아홉 살, 수줍어 빨간 얼굴을 한 나를 보는 것 같구나.

나도 그 때는 너만큼 예뻤었단다.

꽃아, 예쁜 철쭉 꽃아, 너무나 아름다워 가까이 가서 꼭 안아주고 싶구나.

그렇게 예쁜 너도 계절이 바뀌면 시들어지겠지.

지금 이 시간이 중요하니까 너무 서러워말아라.

예쁜 철쭉꽃아,

너를 보는 내마음은 지금도 소녀같구나.

차삼심 (2012.5월)

중학교에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라니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네. 지난 날들을 뒤돌아보니 올해는 나에게 뜻 깊은 해였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이 된 것과 여러 선생님을 만난 것과 우리 반 학생들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교과서 전 과목을 배우면서 얼마나 웃었던가. 특히 영어, 한문, 컴퓨터, 음악을 하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웃고 또 웃고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재미있는 날들이었다. 음악 수행평가 때 한 사람 한 사람씩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를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떨리는 마음은 어린 아이 같았다. 또한 내가 글을 써서 학생들 앞에 나가서 읽을 때 학생들의 박수소리에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 마음에 남아 있다.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나이 들어서 배우니까 더 재미있다.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각자의 머리 속에 담아주시는 선생님들은 정말 위대한 분들이시다. 선생님들의 수고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내가 젊었을 때 누가 중학교 말만 나오면 나는 고개가 숙여졌다. 배운 것이 없으니 얼굴이 빨간 홍당무 같았다. 이 나이에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 기적인 것 같다. 배우지 못해서 늘 기가 죽었던 나. 이제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나 자신을 생각하고 늘 감사하며. 나를 몰랐던 나, 이제라도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겠다. 늘 이렇게 웃으면서 살아가리라.차삼심 (2012.12.23)

입학 전에는 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는데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워 하나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자식에게, 동생에게, 친구들에게 누구라고 정할 것도 없이 그냥 쓰고싶은 대로 글을 써본다.

젊은 날,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물어볼 때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몹시 슬펐던 차삼심 씨(63세). 그 자식들도 이제는 공부를 다 마치고 출가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기에 그녀에게는 특별한 목표도 없이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뒤 그녀 인생은 새로운 희망에 설렌다. 예쁜 철쭉꽃을 보면 아직도 “내 마음은 소녀 같다.”고 할 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중학교 2학년, 사는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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