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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바람 부는 날
  • 기사등록 2012-04-03 16:5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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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던 봄비가 흥건히 내리더니 해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 인지는 몰라도 천방지축으로 휘둘리는 바람의 소용돌이가 만만치 않게 몰아칩니다.

겨울 내내 감기 한번 걸려보지 않고 궂은 날씨에도 굳건하게 삶의 끈을 부여잡고 동분서주 하면서도 전혀 기세를 잃지 않았는데, 혹독한 시절이 끝났는가 싶어 방심한 사이 코 끝을 파고드는 냉기를 막지 못하여 며칠째 고열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침을 동반하고 흘러내리는 콧물과 함께, 몸속에서 일어나는 열 기운으로 입술은 바짝 타들어 가더니 이제는 갈래갈래 찢어지고 코가 자주 막혀 숨을 쉬는 일도 힘들어 집니다.

예전 같으면 한 봉지 아니면 두 봉지의 감기약을 복용하면 거뜬해지더니 계속되는 투약에도 눈망울이 침침해지면서 몸에는 기력이 다하려는 듯 그저 정신이 몽롱하기만 합니다.

이따금 휘몰아치는 바람에 기침을 돋우어 허세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문득 촛불 같이 약하게 느껴지는 스스로의 신세가 민망하게 보여 지기도 합니다.

망연자실하여 창밖을 통하여 정원에 옮겨 심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소나무들이 격정적으로 흔들리는데 잘 견디어 낼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최근에 자라난 연약한 가지들이 이미 부러져 이곳저곳에서 떨어져 뒹굴고 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한량이 없습니다.

눈보라를 동반한 삭풍이 불어대던 한겨울에도 이처럼 심하지는 않더니 무슨 심산으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이토록 가혹하게 몰아쳐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주변을 돌보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아가면서 온갖 이기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분별없는 인간들을 향한 조물주의 분노에 찬 질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막 땅을 뚫고 일어서는 초목들에게 내리치는 타격은 한 해 동안 몫을 지어 시한부로 주어진 삶의 시작부터 이어지는 깊은 시련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몇 차례 반복된 날씨의 변덕으로 예년보다 늦어진 매화가 겨우 꽃망울을 터뜨려 백색의 향연을 펼치면서 부나비를 모아야 하는데도 궂은 날씨에 애써 찾아와 줄지 염려가 될 뿐입니다.

기다리던 손님이 찾을 때까지 간직한 꿀을 전해주고 수정을 마쳐야 하는 씨방과 꽃잎들이 서로를 염려하며 아끼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끊어질 듯 연약한 가지 끝에 위험스럽게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의 가지가 천방지축으로 흔들리는데, 과연 순간을 극복하여 나머지 꽃잎을 활짝 열고 자태를 뽐내는 날이 올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기나긴 세월을 견디어 내고 물오른 가지에 드디어 머금은 꽃눈과 잎눈은 사방팔방으로 불어오는 광풍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존재의 의미를 끝까지 잘 지켜갈 것으로 보여 집니다.

재래시장 입구부터 중간 중간에 설치된 천막과 파라솔뿐만 아니라 손님을 기다리며 진열된 상품들이 혹독한 바람에도 잘 견디어 줄지 또한 염려가 됩니다.

시장의 모퉁이에 서 있는 높다란 기둥에는 상인들의 천막을 고정시키는 끈들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데 모질게 당겨지는 힘을 지탱할 수 있기를 무언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이어가는 상가들의 전면에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는 간판들이 몰아치는 바람에 굉음을 울리며 흔들리고 있어 혹시 그 중의 하나라도 떨어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행사를 알리거나 누군가의 좋은 일을 기념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매달려 온몸의 진기를 끌어 모아 안간힘으로 버티는 파찰음 또한 애처럽게 들리기도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선거벽보와 현수막 또한 마찬가지 힘들어 보입니다.

차량의 행렬이 물밀 듯이 오고 가는 네거리의 공간을 차지하고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음률과 자원봉사자들의 율동, 오가는 시민들을 향하여 끝없이 지지를 부탁하며 간절하게 고개를 숙이는 후보자들의 염원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람은 거칠게 쓸어가고 있습니다.

농부들이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며 애써 갖추어 놓은 비닐하우스와 그 품안에 소중하게 뿌려 놓은 농작물들의 어린 싹을 향하여 발톱을 세우고 현재도 광폭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좌충우돌로 몰아쳐 온갖 궂은 것들을 뒤죽박죽으로 헝클어 놓아 거리의 청소를 마친 미화요원들의 가슴을 인정사정없이 후벼대기도 합니다.

길이 막혀 버린 섬사람 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고향땅에 두고 온 모든 사물들이 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 안전하기를 간절하게 고대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가슴으로 듣고 있을 뿐입니다.

계류장에 매달린 어선들은 할 일 없이 삐그덕 거리며 꽁무니를 이리저리 물결치는 대로 흔들어 댑니다.

갯가의 생물들을 채취하여 살아가던 사람들은 발길이 막혀 선착장에 나서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마주하면서 망망한 바다와 갯벌을 피로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쉬어가는 고단함의 농도를 묽게 하는 고마움과 하루의 일당을 놓쳐버린 허전함이 동시에 뇌리를 스쳐갑니다.

바쁜 일터에서도 주부들은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들의 안위가 염려가 되고, 그사이 공사장의 인부들은 자신들이 애써 건설한 구조물들이 무사하게 잘 견뎌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봄빛이 무르익어 예쁜 자태를 뽐내려는 여학생과 처녀들의 머리칼은 질서를 잃고, 짧은 치마는 어지럽게 날리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아이들의 하루가 염려되고 학업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집으로 무사하게 귀가한 자녀들은 오히려 일터에서 고생을 하실 부모님을 위하여 꼬막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친 바람은 이세상의 흉포함과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고 남김없이 쓸어가려는 심산인지는 몰라도 그 기세를 전혀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요사이 언론 보도 매체를 통하여 전달되는 어두운 소식들을 차라리 이 바람에 실려 멀리 날려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이토록 거친 광풍도 다가오는 계절의 순환과 함께 순한 양이 되어 우리들 볼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바람 불어오는 날이 있었기에 때로는 순간에 찾아오는 정적과 함께 솔잎사이 묵언으로 머물러 평화와 안정을 속삭이게 되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인생의 바람이 부는 날들일 지라도 마음의 평온과 내일의 행복을 바라는 애틋한 씨앗을 가슴에 뿌려두어 지극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일의 희망이자 미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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