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애증의 굴레, 흡연.(2)
  • 기사등록 2012-03-20 12:19:06
기사수정
 
평소에 아껴두고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걸치던 녀석은 세상에 나서 단 몇 차례의 빛을 보는 잠시 동안 부주의로 자신이 간직한 효용의 태반을 상실하여 불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따금 눈에 비치는 문제의 양복에 대한 애틋한 조여사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오고, 엎질러진 손상의 그림자를 살피다보면 버릴 수도 입을 수도 없어, 십년도 훨씬 넘어버린 세월 동안 침묵과 함께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못 쓰는 것들은 버리고 가자고 성화를 하지만 잠간 동안만이라도 맺은 지극한 인연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과오로 잘못된 그를 스스로 내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슴 한쪽을 절절하게 물들이면서 후회와 회한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흡연으로 인하여 입은 참화는 그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매달 만나는 정다운 모임자리에서 상당량의 술을 마신 상태로 살며시 생각나는 유혹에 못 이겨 밖으로 나와 한참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불씨가 상대방과 부딪히며 그 과정을 설명하기에도 곤란할 정도의 짧은 사이 오른쪽 눈에 닿아 버린 것입니다.

기겁을 하며 털어내었는데 다행히 눈동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나 아래 눈까풀에 불기를 머금어 약간의 화기를 입고서 무상한 세월이 지나버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거울 앞에서 화상의 검은 반점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크게 튀어나는 흔적도 아니었지만 엄연하게 찍혀진 애증의 반점을 보고는 시간을 되돌려 보고 싶은 만시지탄의 아픔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담뱃불을 들고서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비싼 옷을 태워버리고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도 보았으며, 직장 동료 중에 혼자 있는 아파트에서 적적함을 이기지 못하여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다 깜박 잠이 들어 이불에 붙은 불씨로 질식사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목견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미리서 벗어나려는 몇 차례에 걸쳐 시도된 단절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갑갑하고 끓어오르는 가래와 기침은 스스로의 처연함을 은연 중 내포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의지로 그 고리를 끊어 낼 수만 있다면 당연히 버리고 가야 하는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무작정 달려온 나의 인생살이가 평탄한 대로나 다름이 없었다면 그처럼 독한 것을 계속하여 가까이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능선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꼬부랑길과 같았는지는 몰라도 우여곡절의 인연 줄을 잘라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가족들과 이웃들이 평화롭기도 하면서 인간답게 잘 살아가는 세상을 바래왔던 가슴속에 무언가 항상 부족한 갈증과도 같았던 허무함을 달래기 위한 기대심리로 그를 가까이 하였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스스로의 뜻대로 버리기에는 벅찬 상대와의 관계를 만약 깔끔하게 정리하게 된다면 그동안 염원하였던 화합의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기가 주어지자 드디어 단절의 결심을 새로이 굳히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거사를 실행할 것인지를 면밀하게 살피는데, 며칠 후에 돌아오는 생일만이라도 지내고 차분한 마음으로 결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전쟁에 임하는 장수처럼 몇 가지 전투수칙을 세웠습니다.

그동안 실패를 거듭한 이유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였던 때문으로 첫째 아무리 화가 나거나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는 번복하지 않을 것이며,

둘째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거나 의식이 희미한 경우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셋째 실제 파계를 하였더라도 그 다음 순간부터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굳게 마음을 다진 후, 실패의 순간을 대비한 담배 1갑을 눈에 보이는 곳에 공연히 비축을 하여 두었습니다.

거사일로 정해진 2009. 9. 17. 00:00경을 10여분 앞두고 세면장과 겸한 화장실에서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불을 붙여 깊숙이 마시면서 서서히 이별의 준비를 서두르는 사이, 하필이면 일본으로 학업을 떠나기 위하여 잠시 귀향을 한 딸 녀석과 마주쳐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후의 순간에 찾았던 담배가 얼핏 생각이 났는데, 질기고도 질긴 끈을 이번에 만큼은 기필코 끊어내겠다는 각오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첫 번째 날을 보내는데, 지루한 나머지 잠시나마 위로를 받기 위하여 그날 저녁에는 평일인데도 후배와 같이 무안 일로읍 청호리 부근에 있는 미끼를 끼워 대를 던지면 곧바로 소식이 오는 저수지를 선택하여 낚시를 하였습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날 밤이 깊어가는 내내 낚시찌는 말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 위로를 바라는 마음에 오히려 스트레스만 가득 쌓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위안거리마저 무너진 상태에서 그 다음날을 힘들게 보내고 사흘째 되는 날은 토요일 숙직 근무인데 평소 같으면 담배 피우는 재미로 온통의 시간을 채웠어야 하는데, 지나간 날의 아쉬운 상념만이 쌓여가면서 참으로 지루한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야만 했습니다.

3일을 보내는 것만도 이미 상당한 기운이 빠져 버렸는데 처음부터 너무 강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평소 낚시와 당구와 술을 좋아하면서도 게임과도 같은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할 처지에 있었으므로 이 녀석을 끊어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우려를 안고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막연한 약속을 하루하루 힘겹게 지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스스로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나름대로는 배수의 진을 친다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겠다는 사실을 미리서 여기 저기 공표를 하여 두었습니다.

시간이 점점 더해 갈수록 성격이 상당부분 조급해지기도 하고, 격정적인 순간이 닥치기도 하였지만 시작하면서부터 세운 원칙에 충실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인내의 순간을 무아의 지경으로 되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약 20여년 정도 친분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모임 날이어서 상당량의 술을 마시고 당구 게임을 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힘들었던 4일간의 고비를 넘기고서 한꺼번에 찾아온 장애를 어느 정도는 넘긴 것으로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하였지만, 스스로를 자제하는 순간이 외롭고 고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취한 날은 고단한 육체와 함께 잠이 들었다가 금연의 약속을 저버리는 악몽을 무의식중에 꾸면서 뒤늦은 후회로 땅을 치다가, 벌떡 일어나 현실이 아닌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동료들과의 즐거운 자리에서 술기운이 충만하다보면 장난 끼가 발동한 누군가 전번에 피우는 것을 보았다고 유도신문을 하면, 순간 만취한 날 밤의 꿈속 상황과 겹쳐 황급하게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식욕이 왕성해지면서 바라지도 않는 살이 불어나기 시작하는데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 또다시 갈등에 직면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실패를 한다면 지긋지긋한 이 굴레를 다시는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이를 악물고 각오를 새로이 다지곤 하였습니다.

하루부터 시작한 세월이 한 달 두 달, 가을과 겨울을 넘기면서 계절이 바뀌기도 하고, 급기야는 해가 바뀌는 시간 동안 처음의 약속은 현재까지 계속하여 유효한 것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목표로 삼았던 가족의 화합과 행복의 모습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였으며, 정신적으로 쓰라린 고통이 따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당초의 의지는 확고하게 지켰습니다.

자신을 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이토록 힘든 것인지 실감을 하였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차피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을 바에야 작은 것 하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애증의 굴레를 벗은 우여곡절의 잔해로 스스로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새롭고 강한 고삐가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극복하여 또다시 희망에 찬 굴레를 새로이 만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변변하지 못한 인생의 남은 한 조각 편린일지라도 순간의 쾌락으로 아름답지 못하게 마무리 하는 것보다는, 보다 진전된 모습으로 마지막 불꽃을 은은하게 피워보고 싶은 갈망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스스로의 가슴에 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이후 단 한 번도 언약을 어기지 않았으며, 어렵고도 힘든 굴레를 벗어나는 길이 나의 인생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때로는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최초로 개발한 인디언의 땅 미국에서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전파된 흡연의 문화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폐단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국적인 금연운동과 그 퇴치를 위한 세계적인 추세가 날로 확산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과다한 흡연으로 목에 구멍이 난 환자의 처절한 모습을 광고 화면으로 망설이지 않고 표현하는 이면에는, 마약과도 같이 사람의 건전한 신체와 의식을 보이지 않는 순간에 점차적으로 좀 먹어 들어가는 폐단이 크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위한 기회를 주기도 하고, 화가 끓어 참을 수 없는 순간에 억지력을 발휘하는 순기능도 있기는 하지만, 영속적인 이로움보다는 결과적으로 점점 더 커가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어차피 동거가 불가능한 존재라면 아쉬워도 버리고 가야 하는 애증의 굴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7098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기사 이미지 오늘은 우리들 세상
  •  기사 이미지 보성군·하동군 100년 이상된 고차수 식재 ‘다원결의’
  •  기사 이미지 보성군, 제47회 보성다향대축제 성공 기원 ‘강속구’ 던져
한국언론사협회 메인 왼쪽 1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