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음식에는 시간이 들어 있다. 갓 잡은 식재료가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힘을 만나 오래 보존되고, 새로운 맛과 향, 영양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발효다. 그래서 나는 발효를 단순한 조리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효는 자연을 기다릴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완성해가는 오래된 미래를 열어가는 문화다.
오는 9월 6일 슬로푸드한국협회 담양지부가 마련한 ‘전통방법 토하젓 맛워크숍 & 웰다잉’도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토하는 우리 산하의 1급수 맑은 물에서 살아온 토종 민물새우다. 작은 생명이지만 우리 밥상에서는 훌륭한 음식이 되었고, 소금과 시간, 곡물과 양념을 만나 토하젓이라는 독특한 식문화로 이어져 왔다. 토하젓에는 제철 식재료를 오래 보존해 가족과 이웃이 함께 나눠 먹었던 공동체의 지혜가 담겨 있다.
슬로푸드가 토하를 ‘맛의 방주’에 올린 이유 역시 단순히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토종 식재료와 그 음식을 둘러싼 역사, 생태, 사람들의 기억까지 함께 지키자는 뜻이다. “오래된 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슬로푸드의 정신은 내가 오랫동안 발효를 공부하며 품어온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은 박물관에 보존한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밥상에 올라와야 한다. 젊은이가 먹고, 아이들이 맛보고, 새로운 조리법 속에서 다시 태어날 때 전통은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이번 워크숍에서 토하젓을 크림치즈·오이·깻잎·김치 등과 접목해 ‘청양크림치즈 토하 폭탄김밥’, ‘토하젓 오이톡톡 김밥’, ‘토하 리본 김밥’ 등으로 만들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의 맛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맛이 오늘의 세대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나는 흑초를 연구하면서 늘 ‘발효는 기다림의 미학이다’라고 말해왔다. 미생물은 인간이 재촉한다고 빨리 움직여주지 않는다. 온도와 습도, 계절과 시간과 함께 공감하면서 새로운 맛을 창조 한다. 인간은 자연의 미약한 한 존재의 인식속에서 시간을 존중하고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서 토하젓과 함께 ‘웰빙과 웰다잉’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먹으며 누구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건강한 죽음 역시 건강한 삶과 분리될 수 없다. 행사에서는 최윤지 박사의 웰빙·웰다잉 강연에 이어 전통 토하젓 미식 워크숍이 진행된다.
발효의 미래는 거창한 곳에만 있지 않다. 우리 논과 밭, 깨끗한 물에서 난 지역 식재료를 다시 발견하고 그것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밥상으로 돌려보내는 데서 시작한다.
내가 꿈꾸는 K-발효는 전통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이해하고, 현대의 식생활과 연결하고, 지역 농업과 공동체를 살리는 문화로 확장하는 것이다. 작은 토하 한 마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거대 담론을 끌어 와야한다. 그 안에는 물과 흙이 있고, 농부의 손이 있고, 어머니의 부엌이 있으며, 시간을 견뎌낸 발효의 지혜가 있다.
“혼자 하면 일, 함께하면 놀이.”는 슬로푸드한국협회 곽경자지부장이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음식은 나눔이다는 철학이다. 전통음식도 함께 만들고 함께 먹을 때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가 오늘 토하젓 한 숟가락을 다시 밥상에 올리는 일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과 기억, 그리고 다음 세대의 건강한 밥상을 지키는 작은 시작일지 모른다.
기사의 무단 전제나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432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