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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년 전 포크가 기록한 남도의 농업과 음식 - 농업 칼럼리스트·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6-08-28 08: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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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오는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나주 영산강정원에서는 제3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린다. 올해는 전남광주 27개 시군구가 참여해 지역의 대표 음식과 명인 음식, 주민들이 일상에서 먹어 온 가정식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남도음식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행사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42년 전인 1884년에도 오늘날 전남광주 지역을 지나면서 음식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기록한 외국인이 있었다. 미국 해군 장교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이다.

  

포크는 1884년 조선 주재 미국 공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조선 남부지역을 여행했다. 전라도에서는 전주를 거쳐 장성에서 나주로 들어와 남평과 광주를 지나 담양 방면으로 이동했다. 그는 단순히 길과 관아만 기록하지 않았다. 농경지와 사람들이 운반하는 물품, 자신에게 차려진 음식과 주막,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모습까지 여행일기에 남겼다.

  

장성에서 나주로 향하던 11월 14일의 기록에는 음식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관아에서 보내온 접대 음식에 국(soup), 생강(ginger), 밤(chestnuts), 찬 고기(cold meat), 꿀(honey), 감(kaam) 등이 있었고, 포크는 이어 밥(pap)을 기다린다고 적었다. 오늘날의 음식명과 정확하게 대응시키기는 어렵지만 19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여행객을 접대할 때 어떤 식재료가 이용됐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농업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밥의 쌀을 비롯해 생강과 밤, 감, 꿀 등은 당시 농촌에서 생산하거나 주변에서 얻을 수 있었던 먹거리이다. 음식문화는 조리법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채소, 과실, 축산물 등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다. 포크의 짧은 음식 기록에서도 남도의 농업과 음식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나주 가까이에서는 주막의 풍경도 만났다. 흰 치마에 보라색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포크 일행에게 술을 가져왔다. 포크는 이를 우리말 소리를 옮긴 ‘sul’이라고 기록했고 자신도 한 잔을 마셨다. 무슨 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주막에서 술이 여행객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먹거리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주에 들어온 포크는 관아의 접대도 받았다. 나주목사 박규동이 마련한 음식을 경험했고, 나주를 떠날 때는 목사가 보내온 매우 큰 생선도 받았다. 포크는 그 크기를 거의 고래와 같은 생선이라는 식으로 과장해 표현했다. 어종은 알 수 없지만 음식이 손님을 대접하는 수단인 동시에 떠나는 손님에게 보내는 전별품으로도 이용됐음을 보여준다.

  

민간의 음주문화도 기록돼 있다. 나주에서 포크의 가마꾼들은 여성 주인이 운영하던 주점에서 술값을 둘러싼 싸움에 휘말렸다. 사건 자체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 기록을 통해 당시 읍내에 돈을 받고 술을 파는 공간이 있었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나주를 떠난 포크는 남평을 지나 광주와 담양 방면으로 향했다. 이 길에서 그가 관찰한 것은 유명한 음식 이름만이 아니었다. 길과 농경지, 주막과 시장,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음식은 이러한 농촌의 생산과 유통, 사람들의 이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됐다.

  

포크의 기록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남도음식을 조사하기 위해 여행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외부인의 눈으로 자신에게 낯선 것을 적었다. 당시 조선 사람에게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기록할 필요조차 없었던 밥과 술, 밤과 감, 주막과 접빈상이 그의 눈에는 기록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의 여행일기는 19세기 후반 남도의 농업과 음식문화를 들여다보는 뜻밖의 자료가 된다.

  

142년이 흐른 올해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리는 곳은 나주 영산강정원이다. 포크가 장성에서 나주로 들어와 남평과 광주를 지나 담양으로 향하며 남도의 농촌과 음식을 바라보았던 지역에서 오늘날 전남광주의 음식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남도음식의 뿌리는 결국 농업에 있다. 쌀과 채소, 과일과 축산물 같은 지역 농산물이 있었기에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음식이 만들어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완성된 음식뿐 아니라 그 음식을 만들어 온 농업과 농민의 이야기를 함께 보여주는 자리가 될 필요가 있다.

  

142년 전 포크의 눈에 들어왔던 밥과 생강, 밤과 감, 꿀과 술은 화려한 음식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평범한 농산물과 먹거리들이 쌓여 남도음식의 역사가 되었다. 올해 나주 영산강정원에 차려질 남도의 큰 밥상에서 음식의 맛과 함께 그 맛을 만들어 온 남도의 농업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4.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의 음영.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4.9.27.).

허북구. 2023. 국제남도음식문화큰잔치, 남도 채식과 비건 음식은?.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3.8.23.).

허북구. 2021. 남도음식, 탄소발자국 생각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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