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는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탐험가로 식물학·지리학·기후학·지질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1799년부터 약 5년에 걸쳐 중남미를 탐험하면서 식물과 기후, 고도, 지형, 토양 등을 함께 관찰했다. 그의 자연관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자연을 서로 연결된 하나의 체계로 바라본 시선이다.
훔볼트는 산을 오르면서 고도에 따라 식생이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기온이 달라지고 습도와 토양 조건이 변하면서 식물의 종류도 달라졌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는 식물의 분포를 개별 종의 특성으로만 설명하기보다 기후와 지형을 비롯한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했다. 1807년 발표한 유명한 ‘안데스 자연도(Naturgemälde)’에는 침보라소산을 중심으로 고도별 식물 분포와 기온, 기압 등의 정보가 하나의 그림 안에 표현되어 있다. 오늘날 생물지리학과 생태학으로 이어지는 통합적인 자연관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훔볼트의 이러한 생각은 치유농업을 바라보는 데에도 좋은 시사점을 준다. 치유농업에서는 식물과 동물, 농작업, 농촌경관, 음식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한다.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꽃을 가꾸며 숲길을 걷고 수확한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활동도 이루어진다. 각각의 활동에는 서로 다른 치유 요소가 있으면서 하나의 농장 안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연결된 경험으로 이어진다.
텃밭에서 상추 한 포기를 기르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사람은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며 물을 준다. 햇빛과 온도, 바람과 비에 따라 식물의 성장이 달라지는 모습도 지켜본다. 자란 상추를 수확해 음식을 만들면 재배와 수확, 조리와 식사가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여기에 가족이나 동료가 함께 참여하면 대화와 협력, 나눔이라는 사회적 경험까지 더해진다. 한 포기의 식물이 자연환경과 신체활동, 감각, 음식,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구성에도 적용할 수 있다. 꽃을 이용한 프로그램이라면 꽃을 보고 감상하는 활동과 함께 재배환경, 향기, 촉감, 채취, 건조, 꽃차와 음식, 공예 등으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볏짚을 활용한다면 벼 재배와 수확에서 시작해 볏짚을 만지고 꼬고 엮는 활동, 농촌의 생활도구와 전통문화에 관한 이야기까지 연결할 수 있다. 하나의 자원이 여러 감각과 활동을 이어주는 중심축이 된다.
훔볼트의 자연관은 지역 치유농업의 차별화에도 활용할 수 있다. 산과 바다, 들판과 섬이 있는 전남광주는 지역마다 자연환경과 농수산물, 생활문화가 다양하다. 구례와 광양의 산림자원, 담양의 대나무, 함평의 왕골과 볏짚, 보성의 차, 완도의 해조류, 신안의 갯벌과 염생식물 등은 각각의 환경 속에서 형성된 지역자원이다. 여기에 음식과 공예, 농업기술, 주민들의 생활문화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성의 차를 치유농업에 활용한다면 차나무를 보는 것에서 시작해 찻잎을 만지고 향을 맡으며 수확하고 차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다. 차밭의 경관과 걷기, 제다 과정에서의 손작업, 차를 우리는 시간과 음용, 사람들과의 대화까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할 수 있다. 참여자는 차라는 식물을 중심으로 자연과 노동, 감각과 휴식,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치유농업의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이러한 연결성은 중요하다. 사람은 자연을 눈으로만 경험하지 않는다. 흙을 만지고 식물의 향을 맡으며 새소리를 듣고 몸을 움직인다. 수확의 기쁨을 느끼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시각·후각·촉각·청각·미각과 신체활동, 정서와 사회적 관계가 서로 이어지면서 농업활동의 경험이 풍부해진다.
훔볼트가 자연에서 발견했던 것은 관계와 연결의 질서였다. 식물은 토양과 물, 기후 속에서 자라고, 인간 역시 자연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 시선을 치유농업에 적용하면 농장은 여러 치유 프로그램을 모아놓은 장소에서 자연과 사람, 농업과 음식, 지역문화와 공동체가 서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200여 년 전 산과 숲을 걸으며 발견했던 자연의 연결성은 오늘날 치유농업에도 유용한 시선을 제공한다. 지역의 자연 자원 하나에서 여러 관계를 찾아내고, 그 관계를 사람의 경험으로 이어주는 것, 그곳에서 치유농업의 다양성과 지역성이 함께 자랄 수 있다.
참고문헌
최연우. 2026. 앨버트 슈바이처에게 배우는 생명존중과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8.13.)
최연우. 2026.올도 레오폴드에게 배우는 토지윤리와 치유농업. 전남인터넷신문 치유농업과 음식 칼럼(202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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